나만큼이나 나이가 든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짙은 체리색 몰딩과 삐걱대는 수납장, 큰 안방과 답답한 거실로 설계된 구조까지 . .막상 손 대려니 문제가 한두개가 아니다.
정을 붙여 보려면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필요해서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언젠가는 나만의 스타일로 집을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막상 기회가 오니 덜컥 걱정이 많아진다.
인터넷을 뒤져서 요구사항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동네에 이름 꽤나 있는 디자인 팀과 약속을 잡았다. 의기양양 늘어 놓았던 나의 요구사항들은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내력벽과 공사 소음 우려 등 현실적 조언에 따라 결국 많은 부분이 수정되고, 현실과 타협한 적당한 수준으로 마무리 되었다.
집은 분명 이전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정말 내가 원한 모습일까? 영 2%가 부족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IMF때부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을 감추지 못하는 성향 탓에 돌아보니 회사생활에 부침도 많았고, 특히 어린시절에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니었다. 재빠르게 눈치로 무장하고 크게 숨 한번 몰아 쉬고 참아내는 것은 직장인의 미덕이다. 이럴땐 이래야 한다는 틀안에 맞춰 보려고도 해보지만, 타격에 견뎌내는 근육만 강해질 뿐이지 타격에 익숙해지는 것은 않는다.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을 확인하고 작아지는 나를 발견하곤 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신념과 다른 지금의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사회가 정의해준 나의 위치에 맞는 페르소나로 살아내야 하는 걸까? 그러면..그렇게만 하면... 나의 공동체는 더 평온해지고, 나도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 박동훈 부장의 말...
다들 평생을 뭘 가져 보겠다고 고생고생하면서, '나는 어떤 인간이다'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데, 뭘 갖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원하는 걸 갖는다고 해도,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견디고, 무너지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그냥,, 다 아닌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