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한창인 오슬로에서는 수영복과 작은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작은 연안의 섬에서 해수욕을 즐긴다. 배는 대략 한두 시간을 주기로 섬들을 순환한다. 내가 항구에 도착하니 곧 10시, 배가 출발할 시간이다. 이미 사람들은 배에 올랐고, 표를 받는 선장님은 그을린 팔을 들어 올리며 시계를 체크하고 있다.
이번 배를 놓치면 한 시간을 다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배 쪽을 연신 돌아보며, 급하게 매표소에서 티켓을 샀다. 한 손에 표를 받아 들고 50m쯤 떨어진 선착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선장님께 손이라도 흔들며 태워달라고 소리라도 질러 볼 요량이었다. 결승선에 도착했다는 성취감도 잠시..
한껏 밝은 미소를 가진 선장님이 표를 받으며 윙크와 함께 말을 건넸다.
"You don't need to run. You're travelling now"
나는 왜 노르웨이로 여행을 왔지?
너무 맑고 쨍한 하늘, 하늘거리는 휴양지 옷을 입고 그것보다 더 환한 미소와 상기된 얼굴을 한 십여 명의 사람들 사이로 나 혼자 이질적인 공간에 떠있는 기분이 훅 하고 밀려든다.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바다를 가르며 배가 출발하고도 한동안 나는 그렇게 멍한 기분이었다.
가장 효과적으로 짜인 스케줄로 바쁘고, 빠르고, 편리하게 제공되는 서비스에 익숙해져 잠깐의 기다림 조차 불편하다. 모든 상황에서 "효율"이라는 관성에 맞춰 생각 없이 움직이는 나를 만난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호핑투어 중 섬에서 즐긴 바다수영
선장님이 던진 질문과 함께 노르웨이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오슬로(도시)를 벗어나면 노르웨이는 작은 마을이 군데군데 있는 대부분 험준한 산악지대다. 쉐락볼트(Kjeragbolten) / 프레케스톨렌(Preikestolen) / 트롤퉁가(Trolltunga) 트레킹과 최북단 신들의 정원 로포텐 제도(Lofoten)까지 남단에서 북극권까지 이동하며 산행을 이어 갔다. 빙하가 녹은 피오르드의 비현실적 풍광과 해수면기준 1천 m 높이의 절벽 위를 걷는 트레킹 코스는 인생샷을 노리는 여행자들에게 이미 유명한 곳이다.
노르웨이의 산에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까칠함과 도도함이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산을 좋아하면 갈 수 있도록, 정상까지 바위에 안전바와 로프를 설치해 주고, 나무나 돌계단까지 친절히 준비하는 우리나라와는 산을 대하는 생각마저 다르다.
유심히 봐야 찾을 수 있는 돌 위에 "빨간색 T" 페인트 글자만 간간히 있고, 지나다닌 사람조차 많지 않으며 그마저도 각자 나름의 루트를 따라 이동하다 보니 길을 잃기가 쉽다. 나도 몇 번을 경사도 심한 언덕에 막혀 기어서 이동하기도 했다. 심지어 절벽 위 정상 전망대조차 안전장치나 노약자 배려시설은 찾아볼 수 없다.
자연 그대로의 산을 오를 수 있는 자만 오라! 사고가 난다면 너의 책임이다! 오롯이 이대로의 나를 즐기고 원래 없던 것처럼 인간 너는 내려가라! 는 식의 거친 훈계를 듣는 느낌이다.
트레킹 코스를 안내하는 빨강 T
노르웨이 최북단 북국권 로포텐 제도(Lofoten islands) 트레킹 중에...
이런 산행이 낯설어 한동안 불편하고 무섭기도 하더니, 몇 번의 내가 스스로 길을 만들며 오르는 과정을 거치고 나니, 길을 찾는 행복까지 즐기고 있는 자유로운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잘 닦인 안전한 길을 걷는 것과 다소 힘들고 가끔은 돌아가야 하더라도 내 의지로 만들어 가는 길을 걷는 행복의 차이가 여행과 많이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