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ground Image: steve_j (@unsplash)
8월 한달 동안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외출을 한 것을 세어보니 4~5회 정도 된것 같다. 그 중에 하루는 지도교수님을 뵌 날이 있었다. 때는 8월 중순으로 국내 코로나 발생자 수가 급격히 안정세를 보이고 있던 시점이었다.
비록 올 초 창대하게 계획했던 많은 일들이 무산 되었지만, 지금 수준만이라도 유지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이야기를 나눈 날이었다. 그런데 너무 섣부른 욕심을 부렸던 것일까, 바로 그 다음날 부터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수 백명대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점을 보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두가 알테니 자세히 이야기 하지는 않겠다.
몇 달간 철저한 방역과 교내 마스크 착용 원칙 아래 이루어지던 대면 수업은 그렇게 너무나 쉽게 다시 온라인으로 돌아가 버렸다. 기말 프로젝트 발표도 온라인으로 대체 되었고 가을학기 개강시에도 2주간 온라인 수업 원칙 공지가 전달됐다. 몇 주 간의 여름학기가 쉴새 없이 지나갔고 일주일간 짧고도 긴 방학을 얻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번 8월은 어쩐지 여느 해와 비교해서 너무나 지난하고 힘들었다. 사실 학업과 학생회 업무, 공모전과 같이 물리적인 시간을 쏟는 일들은 괜찮았다. 바쁘게 지내는 날엔 오히려 개인적인 사사로운 감정이 불쑥 튀어나와 침잠하지 않았고, 간신히지만 그럭저럭 썩 괜찮은 날들을 보내기에 더 없었다. 오히려 오랜시간 가깝게 지냈던 지인들이 불쑥 찾아와 본인의 외로움에 대해, 슬픔에 대해 위탁 하려는 때 견딜수가 없었다. 혹은 최근 너무나도 평화롭고 단조로워진 일상으로 권태로움을 느끼는 나에게 예기치 않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도 바람이 빠지는 풍선 마냥 기분이 쪼그라 들었다. 서로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국엔 완벽한 타인이구나. 기대치가 있던것은 아니지만 나의 감정에 대해서 돌 볼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을 오롯이 느낀 날이었다.
사실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이 근 한 달이 다 되어 가는것 같다. 아니 어쩌면 최근 2~3년 동안 계속해서 반복되어 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공식적으로 칩거 생활을 하고 뭐든지 다 'Untact'화 되어가는 시대에 살다보니 홀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기분에 침식 당하고 있었던것 같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자주 머릿 속으로 되 뇌이던 생각들이다. 그런데 괜찮은 듯이 지내려고 애쓰고 나니 돌아온 것은 느닷없는 에너지 뱀파이어였다. 실은 괜찮지 않다. 마음씨가 여기저기 삐뚤빼뚤해진 상태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이야기 하는 도중에는 맥락없이 울고싶은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 왔을때는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사람의 기분이었다.
정말 맘 놓고 울었던게 언제였더라? 나름 나의 생활엔 안정이 찾아왔다고 생각 했었는데 감정을 절제하고 지내며 만든 거짓 평화였나보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보니 거위는 배타성이 강한 동물이라고 한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패밀리 외엔 전부 다 적이라나. 그래서인지 대전 캠퍼스에 있는 오리연못 근처를 돌아다니는 거위들이 흡사 깡패(?)처럼 보였나보다.
충직한 거위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시간에 대한 연민으로 사진첩을 뒤적 거리다 보니 말도 안 되는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올 해 목표가 무어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 "알쓸신잡에 나오신 김상욱 교수님을 실제로 뵙는게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라는 실 없는 소리를 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 EBS 작가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독자를 소규모로 초대해 진행하는 방송에 출연한 일이 있었다. 맘이 맞는 친구들과 계획 없이 불쑥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인천, 경주, 부산, 군산, 춘천. 많이도 돌아다녔다.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보기 위해서 혼자 표를 예매해 뮤직 페스티벌을 다녀온다거나, 여러 사람들과 주말마다 운동을 한다거나. 김동률의 신곡이 나왔을 땐 가장 친한 친구와 한강 공원에서 와인을 마시며 음감회를 하기도 했고, 2년 연속 콘서트 예매를 성공하는 행운도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 부터 품었던 꿈인 강연의 기회도 평소 친분이 있던 교수님을 통해서 이뤘었다.
반면 올 해는 카페를 가고 여행을 가는 정말 사소하고 말이 되는 일상이 말이 안 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문득 아무리 인생이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해도 어떻게 지난 해에는 이렇게 즐거운 일이 많았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유난히 좋은 일이 많았던건 아마 그 시절의 내가 하고싶은 것들이 많았기 때문인것 같다. 어떤 작가분의 웹툰에서 버킷리스트와 행운아라는 주제를 다룬적이 있다. 학창 시절 길을 가다 보라색 깃털을 줍는것 같이 남들이 볼 땐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버킷리스트에 쓴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중 대다수를 이뤘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조각들이 떠오르고 나니 다시 재밌는 일들을 꾸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 감정이 한 없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는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좋아지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행동하기로 했다.
잠 자리에서 일어나면 3분 내로 정리를 한다거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고 명상 음악 틀어놓고 멍 때리기를 하고 주기적으로 녹차를 마시는것과 같이 말이다. 하루에 한 번씩 족욕을 하거나 마사지를 할 예정이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 먹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에는 글을 쓸거다. 그리고 몇 몇에게는 한 동안 의도적으로 거리를 조금 둘 예정이다. 나에게 더 잘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키울 거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