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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arest Blue May 09. 2020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時節因緣(시절인연)




바람 머리칼을 한없이 흩뜨러 놓아도

옅은 너의 미소는



-페퍼톤스, 청춘






짧은 머리칼이 겨우 어깨선에 닿을듯 말듯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닿을듯 말듯 한 마음들이 있던 시절 말이다.




그 시절의 너는 줄곧 빨간 바탕에 커다란 별이 그려진 컨버스를 신곤 했었다.

텅 빈 운동장에서 태양을 등진채

눈부시게 빛나는 새 하얀 여름 교복이 꽤나 멋스럽게 어울리는 친구였다.





간혹 떠오르는 그 시절의

교복 바지의 짙은 남색은

괜시리 나의 맘을 간지럽힌다.






그 시절 너에 대한 것들은

이제는 드문 드문 맞춰지지 않는 퍼즐 처럼 흩어져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몇몇 장면들은 분명하게 떠오른다.




예컨데 이러한 것들이다.




작은 방에 웅크린채로

수화기 너머의 '취중진담'을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가며 소란스러워 하던 나의 마음,



장난스러운 내게 어울린다며 선물해주었던

허밍어반스테레오의 'Banana shake'라던가,



느닷없이 전해 주었던 'Lover Boy'가 타이틀 곡으로 실린 클래지콰이의 3집 앨범 같은 것들 말이다.



2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서로 연락을 하며 지냈지만,

어떤 의미 있는 관계는 되지 못 하였었다.

그래서인지 더 아렴풋 하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어린시절 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너는

그렇게 음표처럼 기억된다.








오랫동안 좋아한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던날

문득

처음 그들을 알게된 순간이 궁금해졌다.







그 시작은 놀랍게도 기타줄을 제법 잘 만지는 가늘고 긴 손을 갖고 있던 너였다.






"Peppertones"


시부야계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 잔뜩 보내준 음원들 사이에서 두드러지던 파일들이었다.





지금은 나에게도 너의 존재는 바랜 모습이지만,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그 음악이 품고 있는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아직도 나의 마음은 그 시절의 운동장 위를 서성이고 있는것만 같다.






그 시절

그리고 지금의 나의 일부를 만들어준,


이제는 서른을 훌쩍 넘겨버린 네가

어디에선가 어른의 모습으로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한다고 들었다.







그 때의 우리의 나이에 가까운 시간이 쌓여

조금은 흐릿하고 조금은 아련한 것들.






내 취향에 나이테처럼 스며

영원한 여름처럼 기억되어주어 ,

고마운 순간이다.








너무 빠르지 않고 안단테처럼

살아가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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