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싱가포르의 식문화 이야기
싱가포르에서 집을 알아보다 보면 주방이 없는 집이나
주방이 있더라도 요리를 하지 못하게 하는 매물이 종종 눈에 띈다.
날씨가 1년 내내 덥다 보니 조리를 하고 제대로 뒷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
바선생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음식이 금새 변질된다.
더운 날씨 탓에 음식들의 대부분이 기름에 볶거나 튀긴것이다 보니
집에서 요리를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중화 문화의 영향으로 외식이 발달한편이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정말 흔하다.
싱가포르 현지인들은 퇴근 후 저녁 뿐만 아니라 아침 식사도 밖에서
간단하게 때우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도 내가 살았던 집들은 주방에 가스렌지 정도를 갖추고 있었다.
친구들과 같이 한 방에서 모여서 살 때는 주말마다 직접 밥을 해먹곤 했었는데
아파트의 쉐어룸으로 이사가고 나서는 오히려 요리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싱가포르 생활이 익숙해져서 입맛이 현지화 된 탓인지
생활 습관이 현지화 된것인지 밖에서 사먹는게 더 편해졌다.
싱가포르의 현지 마트의 물가가 그다지 저렴하지도 않고
대부분을 수입하는 식재료들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신선하지도 않았던 점도
요리와 멀어지는데 한 몫 했다.
지금도 구글에 싱가포르 취사 불가를 검색해 보면 요리를 할 수 없는 집에 대한
검색결과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싱가포르에서 살다가 한국에 돌아 왔을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싱가포르 물가 비싸지 않아요?"였다.
부자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있는 싱가포르의 물가가 비싸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것 같다.
물론 대부분의 공산품 같은 생필품 뿐만 아니라 농산물 등 식재료까지도
모두 98%정도 가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물가가 비싸긴 하다.
한국에서는 몇 만원 정도면 충분히 살 수있는 전신거울을 구매하려고 알아보다가
개당 가격이 거의 20만원에 달하는것을 보고 포기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집을 렌탈하는 비용을 고려하면 정말 비싸다.
내가 살았던 쉐어 하우스의 경우엔 마스터룸(화장실이 딸린 안방개념)1개와
커먼룸 2개, 공용 화장실 1개, 거실, 주방으로 구성된 집이었는데,
한달 렌트 비용이 한국 돈으로 40~50만원 수준이었다.
그래도 식사 비용은 한국에 비해서 살인적인 수준의 금액은 아니었다.
서울 물가도 싱가포르 못지 않게 비싸기 때문에 더 실감하지 못 했던것 같다.
오히려 요즘에는 서울 빵값이 전세계 1위로 꼽히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싱가포르에서 외식을 할 땐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의 경우엔
1인당 30~40불(한화 3만원 내외)의 예산을 계획해야 했지만
다행히도 싱가포르도 서민들이 살고 있는 나라였다.
싱가포르는 호커센터라는 곳이 발달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푸드코트와 유사하다.
우리나라는 푸드코트가 대형 몰에 입점해있는것과 달리
싱가포르의 호커센터는 대형 몰 뿐만 아니라
아파트 단지 근처에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집 근처에 이런 음식점 상가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집에서 취사를 하지 않는 문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가 밀집한 곳에도 호커센터는 어김없이 있었는데
가게마다 판매하는 음식들이 굉장히 다양했다.
중국요리, 파스타나 스테이크, 죽요리, 칠리크랩 등등 먹고싶은 웬만한 메뉴는 다 팔았다.
가격대도 단품의 경우엔 3~10달러(4,000원~10,000원) 수준이었다.
이건 해외 여행이나 외국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많이들 알겠지만
싱가포르도 역시 식당에 진동벨이 없다.
어찌보면 테이블마다 점원을 부르는 벨이 붙어 있는 것이나
진동벨로 본인이 주문한 메뉴를 카운터에서 찾아가는 시스템이
한국의 고유한 합리적인 시스템이 아닐까 싶다.
회사 근처에 있던 스테이크를 파는 호커센터 매장에서만 유일하게
진동벨 시스템이 있었던 기억이다.
그래서 장난식으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한국의 진동벨 수입하자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곤 했었다.
(이렇게 되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해야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될게 뻔하지만 말이다.)
사실 한국의 서비스는 정말이지 다른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운것 같다.
식당에 들어서면 물과 각종 밑반찬도 공짜에 물티슈 까지 공짜로 쓸 수 있으니 말이다(?)
한국의 이런 무료 서비스에 익숙하다면 싱가포르의 음식점에 가면 주의를 해야한다.
하루는 직장동료와 함께 Holland village쪽에서 만나 식사를 한적이 있다.
밥을 먹고 난뒤 흔한 코스인 카페에서 수다떨기를 하기 위해서 하겐다즈 카페를 찾았다.
다른 가게들에 비해서 유난히 친절했던 그 카페는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웨이터가 문을 열어주며 반겨 주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자 우리의 컵에 물을 따라주는 광경을 목격했다.
아이스크림 메뉴를 주문한 뒤 우리는 여기 이상하게 너무 친절하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싱가포르의 음식점들은 물과 물티슈 등이 모두 유료로 제공된다.
그런데 우리가 요청 하지도 않았는데 물을 따라주다니!
그리고 물잔이 빌 때마다 알아서 물을 채워주는 한국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게 아닌가?
한참을 수다 떨고나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영수증에는 Rounding fee라는 명목으로 서비스 비용이 청구되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싱가포르는 다인종국가답게 여러 나라의 다양한 전통음식을 손쉽게 접해 볼수 있는 나라다.
그리고 내가 거주하고 있을때 당시에는 한류의 인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을 때였다.
싱가포르에 도착하자마자 방문했던 커다란 몰 중 하나에는
백주부님의 프랜차이즈와 cj의 비비고 매장도 진출해 있었다.
특이했던 것은 홍대에 있던 츄로 101도 싱가포르에 있었다는 점이다.
나중에는 대형 슈퍼 마켓 브랜드인 페어프라이스에서도 한국의 만두나
비빔밥 같은 즉석 식품도 많이 판매 하였다.
그런덕분에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면 꽤나 손쉽게 한국 음식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해외에 있는 한국 음식점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맛이 좋은곳도 있고
정말 이게 한국음식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만한 메뉴를 파는곳도 많았다.
그리고 어떤곳은 (상호명을 특정하진 않겠지만) 한국식 치킨을 파는 곳이었는데
냉동 닭고기의 뼈가 새카맣게 변해 있었고 먹는 도중에 닭다리 뼈가 부러지기도 했었다.
치킨러버인 나로서는 이런 음식을 한국음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비싸게 판다는게 굉장히 부끄러웠다.
싱가포르에서 한식에 관련된 에피소드들 몇 가지가 있다.
1. 거기서 맛살이 왜 나와..?
회사 근처에 있는 몰은 여러층이 호커센터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중에서는 한식을 파는 곳도 있었는데 다른 직원들은 비빔밥을 시키고
나는 순두부찌개 메뉴를 시켰다.
간만에 순두부 찌개를 먹을것이라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 있는 순두부찌개는 나의 기대와는 상당히 달랐다.
밍밍한 국물 맛에 해산물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먹다보니 다소 이상한 식감의 물체가 씹혔다.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그것은 다름아닌 맛살이었다.
이 메뉴는 솔직히 싱가포르에서 먹은 음식 중 손꼽히는 최악의 음식 중 하나였다.
2.우리는 너의 소주를 훔치려던게 아니었어
룸메이트 동생과 언니 셋이 한 방에서 살때의 일이다.
그날은 여느때와 다름없는 주말이었다.
평소에는 샌드위치나 라면 따위로 간단히 때우곤 했지만
주말이면 고기를 굽고 밥을 지어 먹곤 했다.
같이 살던 동생A는 쌍둥이었는데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걸 굉장히 좋아했다.
한국에 있는 쌍둥이 동생에게 국제 택배를 받은 A가 불닭볶음면을 비롯한
한국 신상을 개봉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 중에는 과일맛 소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냉장고로 향한 A는 자신의 비장의 무기라며 유자맛 소주를 내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고기와 함께 소주를 나눠 마셨다.
룸메 언니는 평소 마시던 타이거 맥주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역시 한국인은 소주지!를 외쳤다.
그런데 일은 일주일정도 지난뒤 터지고 말았다.
같은 층의 다른방을 쓰는 대만인 유학생이 자신이 냉장고에 넣어둔
한국 소주가 사라졌다는게 아닌가..!
우리가 거주하던 곳에는 한국인은 우리 뿐이었기 때문에
A를 비롯한 우리는 당연히 냉장고에 있는 과일 소주는 우리것이라고
몹쓸 착각을 해버리고 만것이다.
알고보니 방학동안에 대만 집에 다녀온 그 친구가 한국 소주를 사다 놓았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리에게 한국의 과일소주가 도착한 시기와 맞물렸던 것이다.
졸지에 소주 도둑이 되어버리고 만것이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3명이 모두 모여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우리가 똑같은 소주를 사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싱가포르에서 유자맛 소주를 찾기는 정말 힘들었다.
여기저기 존재하는 한국 음식점이며 한국 식재료 취급하는 가게를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유자맛은 아직 수입이 안된 모양이었다.
일주일 가량을 유자맛 소주를 찾기위해 수소문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는 결국 비슷한 자몽맛을 사다주어야만 했고 다행히 잘 마무리 했었던 기억이다.
(그때 당시 자몽맛 소주는 무려 20불 정도에 구매했었다.
싱가포르는 술의 도수에 따라서 주류세가 붙기 때문에 도수가 높을 수록 술의 가격이 더 비싸다)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술에 관한 이야기로 이번 주제를 마무리 해볼까 한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의외의 포인트라고하면
주류 구매 가능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이 190개국 중 15위,
아시아 중 1위를 차지했을 정도라고 한다.
아마 최근에는 많이 없어졌지만 어마무시한 회식문화가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류 구매 가능시간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니, 정말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법치 국가 중 법이 가장 잘 지켜지는 나라 중 으뜸은 당연 싱가포르가 아닐까 싶다.
그런 싱가포르에서 2015년 부터 주류통제법이 시행되었다.
밤 10시 30분 부터 아침 7시까지는 주류를 판매하는것을 금지 한다는것이 주요 골자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법이 시행된다면 아마 알음알음 법망을 피해서
술을 구매하고 판매하는 행위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는 그런것은 얄짤없다.
실제로 늦은 시간에 간식거리와 술을 사러 갔다가
밤 10시 30분이 넘어 주류 냉장고에 자물쇠가 채워지는것을 여러번 목격하고 말았다.
같이 살던 룸메 언니는 술이 약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술을 마시는걸 통제 당하는게 너무 힘들다며 집에서 술을 담궈먹자는 말도 했었다.
물론 실제로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도(?) 주류통제법이 시행되어도
밤 10시 30분이 넘은 시각에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바로 레스토랑이나 Bar에 가는 것이다.
이 곳들은 관리 예외 대상으로 얼마든지 늦은 시간 까지 술을 마시는게 가능했다.
물론 그 곳의 술 한잔의 비용은 매우 비싸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와는 상당 부분이 다른 싱가포르의 식생활 문화에 대해 알아 보았다.
문화 중 의, 식, 주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니 싱가포르로 이민이나 취업, 유학 등을
고려하고 있다면 음식 문화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지해볼 필요가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