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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 Jun 06. 2018

교토에 두고 온 것들

다음에도 교토로 가야 하는 이유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함은 아니다. 누구와도 가볍게 대화할 수 있고 쉽게 쉽게 친구들을 만드는 외향적인 여행자가 있다면 나는 지인 하나 없는 생경한 곳에 덩그러니 떨어져 조용한 사색을 즐기는 무뚝뚝한 타입에 더 가깝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교토에 갔다. 화려하게 수놓아진 조명과 시끌 거리는 소음 없이도 충분히 생기 넘치며, 관광객들로 북적거리지만 어수선함 없이 항상 차분함을 잃지 않는 교토. 가지런하고 깔끔한 골목길과 고요한 카모가와 강가를 천천히 걷고 있으면 혼자 산책하며 시간을 즐기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교토에 여러 번 가게 된 데에는 물론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고 싶어서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매번 여행에 다음을 기약해야 했던 아쉬운 것들이 꼭 하나씩 있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우동집은 휴무

항상 길게 줄이 늘어서 있는 우동집에 가기 위해 그 날 하루의 동선을 모두 뒤엎었다. 몇 년 전 처음 교토를 찾았을 때 오동통한 냉우동의 면발과 닭가슴살 튀김을 정말 만족스럽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다시 그 맛을 느끼고 싶었다.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점점 우동집이 가까워질수록 의외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왜 아무도 줄을 안 서있는 거지...?'

아차, 목요일이 휴일인 걸 전혀 몰랐다! 너무나 초보적인 실수라 잠시 나 자신을 자책했지만 돌아가는 길에도 속상한 마음을 달랠 만큼 멋진 풍경이 놓여있으니 억울하지만은 않았다.



이치죠지 골목에서 받은 전화

케이분샤 서점과 카페를 구경하러 갔던 이치죠지. 버스에서 너무 일찍 내린 탓에 발이 아프도록 걸었는데, 서점의 위치를 못 찾아서 한참 주변을 빙빙 돌아야 했다. 구름으로 덮인 잔뜩 흐린 날씨 때문이었을까, 아직 겨울도 아니었는데 으슬으슬 추워지는 탓에 가디건을 챙겨 오지 않은 게 조금씩 후회됐다.


케이분샤에서 책을 구경하고 골목을 걷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이 익숙하고도 불길한 번호는 회사의 번호였다! 업무 담당자인 나의 확인이 필요해서 걸려온 전화였다. 다행히도 간단한 몇 가지 확인만 받고 바로 전화는 끊어졌지만, 순간 내 모든 정신은 수화기 너머 업무 내용에 쏠려있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급하게 현실에 뛰쳐 들어갔다 다시 이치죠지의 골목길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골목길에 멈춰 서 있었다. 통화 종료와 함께 긴장이 탁, 풀리며 주변을 보니 아까보다 더 어둡고 우중충해진 날씨와 으슬으슬한 한기가 느껴졌다. 가지고 온 가디건을 다시 챙겨 나오기엔 이치죠지와 숙소는 너무 멀다. 아쉽지만 오늘의 일정은 빨리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원래는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동네였을 이치죠지를 적당한 날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다시 담고 싶은 풍경

아침의 아라시야마를 좋아한다. 금세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인기 관광지인 탓에 아침은 유유히 산책을 즐길만한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고, 탁 트인 경관은 상쾌한 아침 공기와 퍽 잘 어울린다. 근처에 위치한 아라비카 % 카페도 꽤 일찍 오픈하기 때문에 지겨운 줄 서기 없이 여유 있게 커피 한 잔 하며 구경하기에도 좋다.


모닝커피와 함께 터벅터벅 걸어 다니며 마음껏 찍고 싶은 것들을 찍는 것도 좋다. 구름 떼 같은 사람들도, 자동차도 없기 때문에 방해 없이 원하는 장면들을 실컷 담을 수 있다. 강가를 감싸고 있는 산의 짙은 녹음을 빈틈없이 꽉꽉 메운 사진이 마음에 들어, 다음번에는 단풍으로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똑같이 찍어보리라 생각하며 11월 경 다시 아라시야마에 갔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사진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여러 번 같은 구도에서 찍으려고 시도했지만 결과는 명도와 채도의 구분할 것 없이 흐릿흐릿하고 특색 없는 사진들. 더군다나 단풍시즌에 맞춰 절정에 다다른 강렬한 색상의 단풍을 보고 싶었지만 좋은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을의 아라시야마 모습도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으로 나중에라도 꼭 남기고 싶다. 


때로는 시간과 날씨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때로는 꼼꼼하지 못해 덜렁거리는 바람에 다시 교토를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아직 교토에는 맛있는 우동집과 한 번 더 찾아가고 싶은 골목들, 예쁜 풍경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찾게 될 교토는 또 어떤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길지 모르지만, 두고 온 것들을 찾으러 몇 번이고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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