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카 Jun 21. 2018

이역만리 우리 집

머나먼 곳에 즐거운 나의 집

미처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다. 편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야근이 일상화된 회사를 다니느라 어느새 옅은 잠밖에 잘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 저녁에 무심코 마신 진한 커피 한 잔에 새벽 네시까지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들이 그저 놀랍게 들렸다.

이런 불면의 시대에서 잘 자고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난생처음 가보는 장소에서도 푹신한 베개와 이불만 있다면 얼마든지 잠에 푹 빠질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집 밖으로 나와 야심 차게 여행을 하는 중에는 내 몸 뉘일 곳은 왠지 깐깐하게 고르고 싶은 마음이다.


독일의 민박집


여행 준비는 숙박업소 사이트의 방대한 리스트를 샅샅이 탐색하면서부터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금의 주머니 사정을 냉정히 파악하는 것은 물론 숙소 사진의 보정을 구별하는 센스와 이미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리뷰, 비효율적인 거리 때문에 고생하지 않을 적절한 위치까지. 이 모든 것을 고려하는 것은 그 어렵다는 십여 개의 메뉴가 포진된 메뉴판에서 오늘의 점심을 고르는 것보다 훨씬 난도가 높은 일이다.

숙소를 정하는 것은 이번 여행의 경비를 좌지우지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것과 같다. 1만 원대의 도미토리 혼성 룸부터 몇십만 원을 호가하는 눈이 휘둥그레 해 질만한 고급스러운 스위트룸까지, 하늘과 땅 차이인 만큼 여행지의 잠자리를 고르는 선택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에어비앤비가 주야장천 외치는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는 메시지는 연신 나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집주인의 취향과 손때가 곳곳에 묻어있는 아늑한 가정집의 주인이 된다니, 아주 멋진 경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예쁜 테라스와 뷰, 개성 있는 가구들이 매력적인 세계 곳곳의 집들은 내 마음을 마구 두근거리게 했지만, 간간히 들리는 못된 집주인들에게 호되게 당한 고생담에서 비롯된 인간 불신과 소심함이 멋진 경험에 대한 열망을 가볍게 이겼다. 나는 지금까지 약간은 사무적이지만 친절한 직원이 로비에서 반기는 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 호텔 등에서 묵게 되었다. 집주인이 일러주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열쇠를 꺼내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덜 아날로그스러우면서, 확실히 더 안전한 쪽이다.


치앙마이 님만해민의 호텔
조식은 선택인가, 필수인가?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의 다인실에 묵게 되더라도 깔끔하고 시끄럽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만족스럽긴 했으나, 가끔은 큰 맘먹고 짧게나마 호텔에서 묵어보기도 했다. 비록 기대에 부풀어 내 맘대로 떠올렸던 상상 속의 모습과는 달라 약간씩 실망했었던 적도 있지만, 하루 동안의 여독을 풀기에는 충분했다.

먼 곳에 있는 목적지까지 무모하게 걷는 편을 선택한 대가로 더위에 머리가 깨지는 두통을 얻거나 길을 잃어버렸던 적도 더러 있었다. 퉁퉁 부은 다리로 힘겹게 걷다가도 낯익은 도로와 지하철 역에 점점 가까워지면 나도 모르게 이미 집에 도착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조용하고 화장실마저도 예뻤던 반캉왓의 집, 낮게 나는 비행기의 소음을 자장가 삼아 잠들었던 님만해민의 집, 주택가와 동네 식당들이 즐비한 곳에 있었던 한적한 골목의 교토 민박집까지. 그 날의 내가 묵었던 집들을 생각하니 주변의 편의점, 식당, 놀이터와 소음까지 그때의 분위기와 거리가 한꺼번에 패키지처럼 줄줄이 떠올랐다. 


치앙마이 반캉왓의 게스트하우스
교토의 민박집


아는 이 하나 없는 아주 먼 곳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즐거운 나의 집이었던 곳들. 다른 부지런한 여행자들처럼 사이트에 부지런히 리뷰를 남기는 편이 아니므로 이 자리를 빌려 전한다. 덕분에 좋은 여행이 되었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교토에 두고 온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