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나라들 그중에 방콕을 간다
퇴사 후 여행을 계획하는 건 당연히 정해진 수순이었다. 휴가를 즐기고 돌아올 나를 기다리는 잔뜩 쌓인 일도, 직장도 더 이상 없었으므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 입맛에 맞는 여행지가 어디일지 신나게 고를 일만 남아 있었다.
늘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후보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회사원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던 페루나 볼리비아 같은 곳을 한 달을 탈탈 털어 가볼까 생각도 했고, 몽골의 고비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들을 이불 삼아 자보고 싶기도 했다. 클래식한 올드카들이 즐비한 쿠바의 하바나는 어떻고!
그러나 높은 지대에 가느라 고산병에 걸려 구토를 하거나, 제대로 씻지 못해서 지저분한 몰골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더군다나 열 시간이 넘는 지루한 비행을 하다 일 때문에 얻은 허리병이 다시금 도지게 하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철저히 지친 심신을 다독이기 위한 '요양'의 성격을 띠고 있는 휴양이었기에.
그렇기 때문에 나의 여행지는 새롭지는 않지만 적당히 멀고 고생할 여지가 없는 방콕으로 낙점되었다. 2년 전 숙소로 가는 길을 잃어 울퉁불퉁한 거리를 캐리어를 끌며 고생스러웠던 첫 방문이 떠올랐지만 이번에는 휴식을 마음껏 즐기고 오리라 다짐했다.
편리한 지상철이 운영되고 빵빵한 에어컨이 가동되는 맛집들과 예쁜 카페들이 널려있는 곳. 수영장이 딸린 호텔에서 즙이 많은 열대과일을 먹으면서 망중한을 즐긴다면 그동안의 고생한 마음이 약간이나마 풀어질 것만 같아 여행날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