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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 Oct 07. 2017

우연으로 만난 장소

방콕의 '리틀 선샤인' 카페

Q. 여행을 하면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A. 우연히 길을 걷다 눈에 띈 장소에 들러 멋진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도 아주 근사한 장소에서.


이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의 노동과 스트레스를 한데 갈아 넣어 마침내 옛다 보상, 하며 짜낸 한 방울처럼 찔끔 주어진 나의 아까운 시간. 짧은 순간을 좋은 것으로만 채우고 싶은 욕심이 조금씩 커지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더 소심해진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예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생각지 못한 추억을 만드는 자유로운 여행자가 이상이라면 인터넷에서 호평을 받은 맛집을 가기 위해 구글맵에 의지하면서 수십 개의 가게를 지나치는 게 현실이다. 겨우 겨우 찾은 가게에 자리를 잡고 (당신네 식당의 오픈 시간과 제일 유명한 메뉴까지 모두 꿰고 정말 어렵게 어렵게 왔지만) 자연스럽게 눈에 띄어 호기심에 방문한 사람인 양 아무렇지 않게 주문을 해본다.


느낌이 온다면 일단 직진하는 용기와 별로라면 나중에 올게요! 하고 당당하게 나올만한 배포가 나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장소는 방대한 양의 리뷰와 사진을 통해 내 기준에 맞는 곳들로 '선정'된 것이며 방문한 다음 때로는 만족스럽고 때로는 더 높은 확률로 실망하면서 '어쨌든 방문했다!'는 이상한 성취감을 안고 오는 것이다.


아무튼 예기치 못하게 만났지만 마음에 쏙 드는 아지트 같은 곳이 바다 건너 한 두 곳쯤은 있다면 마음만이라도 편안하지 않을까.



방콕 여행의 마지막 날, 마사지 예약을 미리 했는데 그만 시간이 붕 뜨게 되었다.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마사지를 받고 바로 공항으로 향할 생각이었고, 숙소에 맡기지도 못해 땀을 닦으며 돌돌돌 캐리어를 끌고 걷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이 남은지라 그냥 가서 기다리면 될까 싶어 마사지 샵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마침 바로 건너편에 카페가 있었다.


카페 앞은 잘 정돈된 잔디가 깔려 있었고 울타리 안에는 조그마한 꽃밭이 마련되어 있었다. 크지 않은 글씨로 'little sunshine'이라 적힌 천이 보였다. 첫눈에 깔끔해 보이는 인상인 데다, 시간을 보낼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미처 못한 상태라 신기루같이 뿅 하고 등장한 카페가 반갑기만 했다. 잔디 위에 깔린 돌을 조심스레 밟으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친절한 주인은 끌고 온 캐리어를 한쪽에 놓아주고 사교성 넘치는 웃음으로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어느 나라에서 여행 왔나요? 와, 당신이 이 카페에 처음 온 한국인이에요!

외국인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영광이라는 식으로 말해주시는데 나야말로 이런 곳을 만나다니 신기하네요, 생각하면서 우연히 들르게 된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사진에 담긴 분위기처럼 아이보리 톤의 색이 둘러싸고 있는 카페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고 식사류도 파는지 가족들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두런두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똠얌 파스타를 먹어봤을 텐데.



좋은 첫인상에 역시나 좋은 경험을 한 우연으로 만난 장소. 붕 뜬 시간 덕에 이런 우연이 가능했으므로 다음 여행은 일정을 헐렁하게 짜 보려고 한다. 반나절 정도는 텅 빈 일정으로 근사한 곳을 찾을 수 있도록! 

하지만 이 또한 '우연히 아주 괜찮을 장소를 찾을 것이다'라는 철저한 계획 아래 설계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역시 리틀 선샤인 같은 곳을 다시 찾는 것이란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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