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사전# 8 지도 / 종이 한 장의 마력
구불구불한 선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인다. “우와~ 이렇게 커?”하며 나라 하나를 가리킨다. 손가락 한 마디로 작은 나라를 덮으며, “안 보이지?”하며 웃는다.
어렸을 때 지도는 또 하나의 장난감이었다. 마루 벽면엔 큰(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다. 각기 달리 생긴 나라들을 쭉 두르고 있던 건 각 나라의 국기. 밥 먹을 때도 동생과 친구들과 놀 때도 지도를 마냥 쳐다보았다.
‘이렇게 많은 나라가 있구나.’ 처음 본 이름을 천천히 읊어본다. 코트디브와르, 투발루, 리히텐슈타인, 그레나다, 모리셔스, 상투메 프린시페... 한번이라도 들어본 나라 이름을 발견하면, 마치 거기 가본 것처럼 신났다. "우와~ 중국!", "나 프랑스도 알아!". 친구들끼리 어떤 나라를 더 많이 아는지 손가락을 꼽기도 했다.
학교에 갔다. 거기서 지도는 장난감이 아니었다. 교과서에 들어 있는 다양한 그림이었다. 계곡선, 등고선, 축도, 방위, 경선 등등 생소한 단어들을 외워야 했다. 지도를 ‘공부’해야만 했던 것. 지도는 단지 수업에 필요한 중요한 교재일 뿐이었다.
차를 운전했다. 지도는 더 작아졌다. 내비게이션이라는 조그만 공간에 존재했다. 그저 잘 안내해 주는 낭랑한 소리만 잘 따르면 그만. ‘직진입니다, 우회전입니다, 방지턱입니다...’
이젠 지도를 볼 일이 없다. 낯선 나라 이름은 더 이상 신기하지 않고, 딱히 궁금한 나라도 없다. 지도를 빤히 쳐다보기엔 나는 할 일이 너무 많고, 고민이 많아진 것. 지도라는 종이 한 장을 보며 마냥 즐거워했던 때가 아득하다.
집안 어디엔가 박혀 있을 낡은 지도를 찾자. 아무리 찾아도 지도가 없다면? 그래도 괜찮다. 나를 설레게 하고, 신나게 했던 나라들을 다시금 그려 보자.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나라 몇 개를 추려보자. 생각만 해도 신난다. 유년 시절, 호기심과 설렘을 주었던 지도. 마음속에 간직하리라. 그리고 언제든 꺼내보리라. 멋있게 떠날 그 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