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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Feb 10. 2022

"아빠, 보드게임 하자!"

코로나가 내게 준 유익

코로나. 2년 전만해도 알지 못했다. 이 낯선 영단어 하나가 전세계를 바꿔 놓았다. 아울러 나와 우리 가정의 모습도 바뀌었다.


나는 아파트 상가에서 조그만 문구점을 운영했다. 많은 돈을 벌진 못했지만, 그냥 우리 세 식구가 먹고살기에는 적당했다. 아이들이 가득찰 정도로 오픈 초기에는 장사가 잘 되었다. 차차 매출은 감소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발길이 대형 문구점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찰나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가 닥친 것이다. ‘몇 달이면 지나가겠지’라 생각했던 나를 비웃듯, 코로나는 더욱 확산되었다.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 수업을 대체했다.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연스레 문구점 손님은 줄었다. 학교 끝나면 부리나케 아이들이 뛰어 왔던 문구점은 종일 한산했다. 아이의 준비물을 사러 오던 학부모들도 인터넷으로 학용품을 구매했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문구점 문을 열었다. 그렇지만, 코로나는 도통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문구점을 접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 했다. 




40대 중반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직장을 다시 다니기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른 자영업도 생각했지만, 경험과 자본이 미천했다. 더구나 아직도 팬데믹 아닌가. 망망대해에 빠진 기분이었다. 다행히 지인의 도움으로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안 해 보았던 일이었지만, 먹고 살아야겠기에 열심히 일했다. 


‘이 망할 코로나가 언제 끝나는 걸까?’ 매일 아침 마스크를 착용할 때마다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진다. 코로나로 새로 시작한 일도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만 늘어났다. 휴. 뉴스에는 매일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났고, 내 한숨도 늘어났다. 


며칠 전, 바쁘게 일하고 피곤한 몸으로 들어왔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외친다.


 “아빠, 보드게임 하자!” 

평소 같았으면 다음에 하자고 귀찮은 듯이 거절했을텐데 아이의 생생한 눈망울에 청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뭐 할까? 부루마불? 모노폴리?” 피곤했지만, 한 시간 넘게 보드게임을 했다. 이후엔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전에는 이렇게 같이 밥 먹었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보드게임 한 적도 없었는데... 그저 서로 바쁘게 살았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침 일찍 잠든 아이의 얼굴을 매만지고 집을 나서야 했다. 하루종일 바쁘게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주말에야 아이와 잠깐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와 둘이 있으면 어색해지기 일쑤였다. 


그때는 그런 생활을 당연하게 여겼다. ‘바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열심히 돈 벌어야 아이가 학교 가고, 학원 가고, 맛있는 것도 사줄 수 있잖아. 나중에 시간 많아지고, 재정이 여유로워지면 그때는 아이와 좀 더 친해지고, 아내와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자위하며, 바쁘게 사는 나를 애써 변명했다. 그렇게 변명하는 만큼, 아이와는 더 멀어졌고, 몸은 지칠 뿐이었다. 그렇게 눈코뜰새 없이 몇 년동안 지내다가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그동안은 코로나가 내 삶에서 많은 것들을 가져갔다고 생각했다. 돈을 가져가고, 직업을 가져가고, 미래를 가져가고, 행복을 가져갔다. 




하지만 요즘엔 생각이 바뀌었다. 코로나가 오히려 내게 준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항상 내 편이었던 아내와 아들. 항상 바쁘게 사느라 그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가끔 쉬는 날, 아들이 놀자고 하면, “아빠. 힘들어. 오늘 쉬어야 돼.” 라며 거절하기 일쑤였다. 아내가 같이 장보러 가자고 해도, “자기가 그냥 보면 안 돼?”라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저녁 먹고 가족이 산책할 때도 둘만 갔다오라며 내 방으로 향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귀찮을 때도 있지만,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 나 또한 충전된다. 종일 시달렸던 일에서도 해방되는 기분을 느낀다. 알지 못했던 아들과 아내의 새로운 면도 종종 알게 된다.




코로나가 내게 준 긍정적인 면은 또 있다. 예전에는 몇 개월에 한 번씩 관광지나 휴양지로 떠났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좋은 방법이 우리 가족에게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1년에 한두 번은 남해나 여수를 가기도 했다. 멀리 가야, 좋은 곳에 가야 여행다운 여행이라 생각했다. 시간을 잘 맞추고 돈을 모아 대만과 베트남에 다녀오기도 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에는 그러지 못했다. 기껏해야 차로 2~30분 거리의 공원에만 갈 뿐. 언제쯤 좋은 곳에 여행 갈 수 있을까 항상 답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꼭 멀리 가지 않더라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주말에 집에서 쉬고 있었다. 아이가 “아빠 밖에 나가자.” 라며 떼쓰는 게 아닌가. 평소처럼 피곤과 코로나 핑계를 대다가, 결국 “뒷산에라도 가보자.” 라며 밖에 나왔다. 


왕복 1시간 쯤 걸었을까. 기분이 상쾌했다. 얼굴을 간질이던 바람도 시원했고, 도심에서 느껴보지 못한 꽃내음도 향기로웠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미처 몰랐을까. 그저 집 밖만 나오면 되었는데... 오다가다 나눈 아이와의 대화도 풍성했다. “다음에 또 오자.” 라며 다음 산행을 기약했다.


저녁 밥 먹고 동네 한 바퀴 도는 것, 집 근처 붕어빵 사 먹기, 가까운 도서관 가서 보고 싶었던 책 빌리기, 길 가다가 보도블럭에 핀 이름모를 꽃 바라보기, 마트에서 간식거리 장 보기, 동네 공원에서 배드민턴 치기, 간만에 만난 지인과 카페에서 시시콜콜한 얘기하기...


특별할 것 없는 별볼일 없는 일상이다. 이 일상의 소중함을 예전엔 몰랐다. 얼마전에 코로나에 확진되었다가 완쾌된 지인이 이런 말을 전했다. “증세는 그렇게 심하지 않은데, 격리가 정말 힘들더라.” 일상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내게도 일상의 소중함이 절실히 느껴졌다. 일상을 누릴 수 있을 때 잘 누리고 싶다. 돈 들이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코로나가 줄어드는 것 같다가도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연 언제 끝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무색해진다. 다른 이름의 또 다른 변이도 생길 수 있다. 마침내 코로나가 종식된다 해도, 이런 새로운 질병은 또 발생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더 이상 두렵지만은 않다. 내 옆에는 힘듦과 아픔을 나눌 소중한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과 함께 언제든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 내겐 백신과도 같은 처방이 되었다.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났다. 간만에 내가 먼저 요청해야겠다.


“아들아! 보드게임 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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