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걸린 코로나, 휴가로 생각하다
피하고 또 피했지만, 드디어 걸렸다! 그놈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집만 빼먹고 돌아다녔는지, 내가 극도의 I형이래서 그랬는지 신기하게도(?) 그동안 코로나가 한번도 걸리지 않았다. 가족들도 다. 카페에서도 다른 알바생들이 릴레이를 하듯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나와 아내는 멀쩡했다(덕분에 아픈 그들 대신 열심히 땜빵해야 했다).
선우가 시작이었다. 저번 주 월요일, 갑자기 아파서 학원에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또 꼼수를 부리려니 하고 이마를 만져보니 따뜻함을 넘어 뜨거운게 아닌가. 당장 해열제를 먹이고, 옷을 벗겼다. 미지근한 물을 받아다가 수건에 물을 적셔 몸과 얼굴을 닦았다. 쉽사리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내도 열이 났다. 그때까지도 감기인 줄 알았다. 하루가 지나도록 아내와 선우는 열이 떨어지지 않고, 기침을 해댔다. 그날 저녁 아내가 무슨 깨달음이 온 듯 외쳤다. “코로나 검사해 보자.”
집에 남아있던 자가진단 키트를 꺼내 검사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아내와 선우 키트에는 선명한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다행히(?) 나는 한 줄. 이번에도 나는 안 걸렸다. 늦은 시간이라 진료가 어려워 아내는 전화로 병원 예약하고, 다음날 아침 병원가서 정식으로(?) 코로나 확진을 받고, 약을 받고 돌아왔다.
약을 먹자 아내와 선우는 조금씩 열이 떨어지고, 기침도 덜해졌다. 진작 코로나를 의심해 볼 걸... 여기에서 끝났으면 해피엔딩이었을텐데 다음날 갑자기 나도 증세가 생겼다. 기침이 심하고, 열이 나는... 다시 자가키트로 검사했다. 역시 나도 확진. 바로 당장 자수하는 심정으로 병원에 달려갔다. 의사의 처방을 듣고, 약을 받고 돌아왔다.
평소에는 내가 와도 방에만 있던 아들이 웬일인지 현관까지 나왔다. 조금 괜찮아졌나 보다. 아들은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내게 인사했다.
“웰컴 투 코로나!”
그때부터 우리 세 가족의 격리가 시작되었다. 선우는 학원에 가지 않았고(오히려 좋아하는 것도 같다), 나와 아내는 주말에도 일해야 했던 곳을 나가지 않았다. 집안 곳곳에는 체온계와 서로의 약봉지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약간 어색했다. 왠지 나와 아내가 없으면 카페가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하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매출은 똑같았다). 간만에 쉬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정신을 차려 뭐라도 하려고 하면, 열이 나서 다시 침대에 쓰러져야 했다.
하루이틀 지나니, 가족들 모두 괜찮아졌다. 아내가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나, 10년 만에 처음으로 이렇게 쉬는 것 같아.”
찡했다. 결혼 후부터 일해야 했던 아내. 제대로 쉴 수 없는 자영업자의 숙명을 몸소 견디고 있었다. 어디 가서 힘들다고 말 한마디 못했을 아내,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을 아내가 새삼 고마웠다.
“맞아! 나도 오히려 방학 같아.”
이렇게 대답하며, 나 역시 갑자기 주어진 휴가가 몹시도 고마웠다. 어디 나가진 못하지만, 오랜만에 가족이 다 모여(그래 봤자 3명이다) 밥 같이 먹고, 보드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대청소도 하고....(물론 싸우기도 했다). 끼니를 잘 챙겨 먹을까 걱정하신 장모님께선 찌개며, 반찬이며 한가득 소포도 보내주셨다.
나도 열내리고 나서부턴 책도 보고, 얼마 후에 있을 강의 준비도 하고, 나름대로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브런치글도 쓴다. 하긴, 잘 만큼 자서 이젠 잠도 별로 안 온다.
이제 며칠 후면 격리가 끝난다. 코로나가 걸려 가족 모두 고생했지만, 쉼 없이 달려온 바쁜 일상 속에서 한줄기 쉼을 가졌다. 다시 치열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땐 또 지금의 쉼이 그리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잘 쉬었으니 다시 열심히 뛰어야겠다.
ps. 그나저나 여름 휴가는 물 건너간 듯 ㅠ 선우야 가을에 못 간 휴가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