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hilip Lee Dec 07. 2023

다시 써야겠다. 오직 나를 위해

내년, 새로운 기대가 생겼다

아침 출근 시간, 커피가 회사 출입증이나 되는 듯 너도나도 한 잔씩, 몇 잔씩 사간다. 알바 오기까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이때. 1시간이 100분이나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 샷을 수십 잔 뽑았을까 어느 정도 손님이 뜸해질 때쯤, 카페 바닥이 꺼지도록 한숨을 쉰다. “후~”      


카페 일을 한 지도 내년이면 4년째. 일은 다행히 익숙해졌지만, 거의 휴일 없이(명절에도) 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보다 더 나를 힘들게 한 건 따로 있었으니. 범인은 바로 (각양각색의) 손님들이었다. 손님들의 성격과 취향은 수십 개가 넘는 음료 숫자보다 (훨씬) 더 많고 다양했다. 게다가 진상이라도 만나면, 윽. 생각도 하기 싫다.       


혼자 있어야 무조건 좋은 나. 소위 말하는 소문자 i형인 나. 그런 내가 종일 누군가와 만나야 하는 서비스 직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장인데.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데. 40대 중반(이제 50에 더 가까운)에 그래도 이렇게 일 할 곳이 있다는 게 어디인가.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 보았다. (안 갈 때가 많지만) 아파트 헬스장에서 러닝머신도 뛰었고, 카페 오가는 도중 좋아하는 인디음악도 들었다. 마음이 안정된다는 (나만의) 느낌에, 일하면서 뭔가를 우물우물 씹었다(목캔디나 커피캔디). 가까운 데로 이사 온 옛친구를 몇 개월에 한 번씩 만났다.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먹기도 했다.     


효과는 미비했다. 다시 스트레스를 받을 상황이 오면, 굳게 먹었던 마음은 여지없이 녹아내렸다. “힘들다”를 내내 입에 달고 살았다. 언제부턴가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는 생각도 줄어들었다.      


얼마 안 있으면 2024년이다. 새해의 기대감은 없었다. 내년에도 올해와 (거의) 비슷한 삶을 살 것이다. 카페에서 샷 뽑고, 음료 만들고, 손님 응대하고, 청소할 것이다. 집에 와선 거의 쓰러지다시피 소파로 직진할 것이다. 그리고 하릴없이 유튜브를 쳐다볼 것이다. 저녁 먹고 과일 먹으며 TV 보다 잠자리에 들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도서관에 가서 다 읽지 못할 책들을 빌릴 것이다. 주말에도 카페를 다녀와서 혹시나 에너지가 남아있다면, 아이와 배드민턴을 치거나 마트에서 장을 볼 것이다. 앗. 작년, 재작년에도 똑같았다. 이런저런 상념이 많은 연말,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글을 써 볼까’      

그동안 글을 왜 안 썼을까. 나름 책도 냈고, 취미가 글쓰기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글쓰기 강의도 했었는데. 왜 거의 1년 넘도록 영상 보는 용도로만 노트북을 사용했을까. 아들에게 일기 빨리 쓰라고 닦달하면서 왜 소파에서 뒹굴며 허송세월만 보냈을까.     


힘들어서? 쓸 내용이 없어서?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 동기 부여를 하지 않아서? 답은 알고 있다. 안 쓴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못 쓴 게 아니라, 내가 안 쓴 것이다. 노트북을 켜고 글 쓰는 것보다는 일단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게 편했기 때문이다. 마뜩잖은 삶에 매몰되어 흘러가듯 대충 사는 삶을 선택했던 것 아니었을까. 씁쓸하다.     



이젠 다시 써야겠다. 쓴다고 BC와 AD로 나뉘듯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여전히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손님은 있을(많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사춘기로 접어들 아이는 나와 각을 세울 것이다. 내 글을 보고 대형 출판사에서 출판계약서를 보내진 않을 것이다. 물가는 더 오를 것이고, 매달 내는 공과금과 은행 대출금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써야 한다. 단 한 가지 이유. 바로 나를 위해서다. 순간순간 만나는 날 선 분노와 우울함. 글을 쓰며 잠깐이라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배고픈 그런 날. 글을 쓰며 적당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왜 그랬을까 처절히 후회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누구도 길을 제시하지 못할 때. 글을 쓰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려 읽고 있는 책 제목이 제법 마음에 든다.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이윤주)』.     

내가 겪은 일을 언어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은
희한하게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것이 구체적인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 못해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내게 구체적인 힘이 되었다. (41쪽)  

  

앗. ‘기대’는 사전에만 있는 단어라 생각했던 나. 새로운 기대가 생겼다. 

다시 써야겠다. 오직 나를 위해. (제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