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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ip Lee Dec 28. 2021

2021년, 왜 이렇게 안 읽었을까?

2021년 내가 읽은 책들


올해 나는 80권을 읽었다. 매년 150권 정도 읽은 것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 준 것이 문제는 아니다. 올해 돌아보았을 때, ‘어떤 책이 좋았다, 어떤 책이 의미 있었다’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한마디로 올 한해를 정리하자면 (80권을 읽었지만) 아무것도 읽지 않았던 2021년이라고 할까. 씁쓸하다. 물론, 7년여간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바빠서였다고 얘기할 수 있다(사실 그것은 핑계다.)      


몇 년 전부터 그랬다. 점점 책을 읽지 않았다. 손에는 항상 스마트폰이 있었고, 집에 오자마자 찾는 건 리모컨이었다. 짬이 나면 쉬기 바빴다. 낮잠을 자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요즘 재미있는 드라마(미드)도 뭐 있는지 검색하고 찾아봤다. 그러다 보니, 책과는 멀어졌다.      


그런 상황이 몇 년간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올해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해지면서 책은 더 보기 힘들어졌다. 꾸준히 도서관에 가서 책은 빌렸지만, (너무 몸과 마음이 지쳐) 자기계발류의 책들만 읽었다. 그런 책은 당장은 효과가 있어 보였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별로였다. 마치 피곤할 때 먹는 자양강장제 같다고나 할까.     


좋은 책을 여유롭게 읽지 못하고, 몸과 마음은 계속 지쳐갔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예전(4~5년 전)에는 책을 재미로 읽었다면, 지금은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읽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읽는 게 어디냐며 얘기할 수 있겠지만...)     


책과 관련된 취미도 줄었다. 서평단을 많이 했었기에 서평을 썼었다. 한 달에 많으면 2~3권씩. 그렇게 서평을 쓰고 SNS에 올렸던 것이 전무했다. 책을 읽고 좋은 구절 노트북에 저장하는 것도 줄었다.      


그래도 다행히 올해 몇 권의 좋은 책을 읽었다. (기록 차원에서 글 뒤에 제목을 써 놓는다) 내년에는 이런 반성(?)의 글 말고, 좋은 책을 많이 만났다는 간증(?)을 썼으면 좋겠다. 의무감이 아닌, 순전히 재미로 책을 집었으면 한다. 아울러 소설을 많이 못 읽었는데, 삶에 잔잔한 감동과 성찰을 주는 좋은 소설도 읽길 기대한다. 고전하게 되는 고전도 몇 권은 읽어야겠다.      


목표를 잡는 건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목표를 잡아본다. 150권 읽기. 다독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많이 읽으면서 다시 성장의 나이테를 키우고 싶다.      


***

『프로젝트 헤일메리』(앤디 위어 / RHK)

과학 소설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 간만에 흡입력 있는 소설 읽은 것 같다. 내가 이과생이었으면 더 소설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항상 침략자와 이방인으로 그려졌던 ‘외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흥미로웠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마션』도 읽어보고 싶다.     


『2인조』(이석원 / 달)

연예인의 책은 보통 그저 그랬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글’이 악세사리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잘 연출된 쇼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석원의 책은 그러지 않았다. 글과 자신이 밀착되었다. 특히 자신의 문제(아픔)를 상세히 드러내고,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감정이입되었다. 내 이야기 아닌가. 연예인(이었던) 이석원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웃으로 다가왔다. 


『죄의 궤적 1,2』(오쿠다 히데오 / 은행나무)

오쿠다 히데오는 소소한 우리네 일상과 이웃을 잘 그리는 작가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약간 결이 다르다. 한 범인을 좇는 형사의 이야기이다. 60년대 실제로 일어난 유괴사건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 아무래도 그때의 방법으로 수사하는 (지금의 스마트함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오히려 흥미로웠다. <수사반장> 보는 기분이랄까.      


『독서만담』 (박균호 / 북바이북)

박균호는 오래된 책 수집가로만 알았다. 이 책을 보며, 깨달았다. 아, 이 사람 글 정말 재미있게 쓰는구나. 이렇게도 서평을 쓸 수 있구나.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그의 책에 대한 애정을 보고, 나도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고민과 소설가』(최민석 / 비채)

내가 좋아하는 작가중 하나다. 특히 에세이가 재미있다. 이 책 역시 그렇다. 단순히 재미만 있는 건 아니다. 삶에 대한 관점들을 많이 배운다. 글을 쓴다는 것도 배운다. 나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작가다.     


『일상이 미니멀』(진민영 / 책읽는고양이)

올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은 요즘 인기다. 그렇지만 천편일률적이다. 방법 위주의 내용이 많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작가가 애정하는 사물을 통해 물건의 의미와 소유의 의미를 나눈다. 문장도 준수하다. 나랑 잘 맞는 작가라는 생각에 다른 책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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