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진 않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만약 인생이 딱 한 번뿐이라는 걸 깨달았다면,
당신은 아직 늦지 않았다.”
-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331쪽
어제저녁, 온라인으로 하는 책모임에서 다룬 책의 맨 끝에 나오는 문장이다. 캐릭터를 빗대어 써 내려간 에세이라 특별한 기대감 없이 책장을 넘겼다. 내용은 단순하지 않았다. 죽비처럼 내 어깨를 쳤다. “너 왜 그 모양으로 그렇게 사냐”고.
한 달 동안 왠지 모르게 무기력했다. 바빠진 카페 일 때문에도 그랬지만, 집에 와선 축 늘어졌다. 예전 버릇이 그대로 나왔다. 소파와 물아일체. 별 볼 일 없는 유튜브 영상 삼매경. 운동은 다시 멀어졌고, 글은 당연히 안 썼다. 그나마 다시 흥미가 생긴 소설책만 간신히 붙들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완전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에 나오는 백수 같았을 것이다.
나와 반대로 가족들은 바쁘게 살고 있다.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아침 8시에 학교 가서, 학원 갔다 오면 저녁 7시가 넘는다. 밥 먹고 씻고 숙제하고 피곤에 취해 잠자리에 든다. 아내는 바쁜 실습 중에도 저녁 알바(월~수)를 하고 있다. 나만 천하태평.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서 지난 주부터 지역 도서관에서 하는 문화특강을 신청했다. 12주 과정이라 나름 큰마음을 먹었다. 특강 제목은 <그림책 심리코칭 지도사 3급>. 이 나이에 그림책이라니. 큰 기대 없이 첫 모임에 참석했다. 예상(?)했던 대로 나만 남자. 나이는 두 번째로 많다. 나름 유익했지만, 잘 신청한 것일까 한 주 고민했다.
오늘은 그림책 한 권을 가져와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할까. 어떤 그림책을 가져가야 할까. 걱정했다. 내 순서는 다행히 거의 끝이었다. 다른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인지라 육아, 제2의 진로 얘기가 많았다. 긴장했던 마음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녹아내렸다.
<낱말 수집가 맥스>라는 그림책을 소개했다. 맥스라는 아이가 우표와 동전을 모았던 형들과 달리 낱말들을 수집하면서 일어난 일을 그린 책이다. 맥스는 수집한 낱말들을 이리저리 움직여 문장을 만들고, 나중에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형들도 동참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으로 이 책은 끝난다.
과거의 나의 일화를 짧게 언급했다. 매우 힘들었을 때 시시콜콜한 내 이야기를 글로 풀어 썼고, 그 글을 인터넷에 올렸던 일. 글을 보고, 한 출판사에서 출간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온 일. 결국 계속 글을 써서 책이 나온 일을 말했다. 뒤이어 요즘은 글을 쓸 여건이 더 되고, 시간적 여유도 많은데도 잘 못 쓰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금 내 삶에서의 경험과 순간의 감정을 잘 모아 글을 쓰고 싶다고 발표를 마쳤다. 다행히 다른 참석자들도 경청해 주었고, 인도하시는 강사님께서도 다음 에세이를 기대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며칠간 아주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내 마음을 움직인 느낌이다. 이젠 일어나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 대단하진 않더라도 특별하진 않더라도 지금 내가 쓰고 싶고, 써야 할 이야기를 쓰고 싶다. 또 하루에 잠깐이라도 운동을 해야겠다. 결국은 그게 내가 사는 힘이 될 테니까.
결론은 이것이다. 뭐라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