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Insight#26 / 모든 게 좋았다
귀농 인구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아마도 팍팍한 도시 생활에 지쳤거나 은퇴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농촌에서 펼치고 싶기 때문 아닐까. 그렇지만, 제대로 준비를 못 한 사람에겐 귀농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다. 여기 농촌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이가 있다. 바로 강석문. 그가 말하는 농촌 생활은 이렇다. 『딱 좋은 날』.
그는 이력이 독특하다. 요즘 보기 힘든 7남매의 막내. 한국화 전공. 서울 생활을 접고 풍기의 고향집으로 이사. ‘행복한 사과’ 판매 사업을 시작했으나 2년 만에 접음. 시골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농사를 거들고 그림을 그림. 현재는 풍기와 양평 집을 오가며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음. 그가 농촌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농사는 수행이라고도 하지만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여전히 밭에서 돌아오면 힘들게 왜 이 고생을 하나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세상모르고 쓰러져 잔 다음 날 조용히 자라난 채소와 과일을 보면
웃음이 난다. 고맙다. 이런 게 행복인가 보다. (61쪽)
무엇보다 저자는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나 보다. 씨앗 하나, 맛있는 사과 한 알, 비오는 날 부침개, 맛있는 떡볶이. 삶의 소소한 순간에서 그는 의미를 찾고 행복을 얻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마음이 그대로 내게도 전해져 웃음이 나곤 한다.
아직도 농사를 하시는, 구순이 넘으신 아버님에 대한 글도 인상깊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아직도 정정히 일을 하시고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일을 하고 계시다.
아버지께서 내 잔소리에, 내 말대꾸에 백 살이 넘을 때까지
‘이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혼내며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당신이 정성을 다하여 키운 채소, 과일을
오랫동안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나는 효자는커녕 참 불효막심한 놈이다. (31쪽)
불효막심하다는 저자의 말이 왠지 찡했다. 거의 반 백 살의 노부와 반 오십 살의 아들. 이 둘이 같이 밭을 갈고 김을 매고, 같이 새참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농촌 일은 쉬운 것만은 아니다. 바람이 불기도 하고, 벌레도 끊임없이 나온다. 전국적으로 물 부족이 심했던 올해. 저자도 쉽지만은 않았다.
우리 집도 작년 여름 가뭄에 물이 말랐다. 난생 처음 우물 바닥을 보았다.
생명력 질긴 질경이가 비비 돌아가 죽을 정도이니
밭작물들도 이미 초죽음 상태였다.
봄에 흘린 땀이 모두 헛수고였다. (18쪽)
저자는 조금이라도 물을 아끼기 위해 소변을 밭에서 해결하기도 한다. 그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농촌의 이런 실태를 알지 못하고 마구 물을 쓰는 나의 모습이 겹쳐왔다.
책의 중간중간에는 그의 그림이 실려 있다. 글을 읽고 보니, ‘역시 그의 그림구나’ 라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익살스럽기도 하고, 정겹기도 한 그림들이다. 한국의 민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농촌과 삶,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가 사는 곳에 가고 싶어졌다. 오래도록 그가 시골에서 살아가고, 순간의 희노애락을 그림으로 남겼으면 좋겠다. 조그만 것을 사랑하고 가족을 아끼며, 자신의 일을 치열히 하는 강석문 씨. 그에게는 모든 날이 ‘딱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