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적 주체와 인증문화에 대해
아직 20대가 끝나진 않았지만, 나는 20대를 보내는 동안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려 부단히 애써왔다.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것을 숫자로 확인하는 일이 나를 얼마나 우울하게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숫자를 내 삶의 성공이나 만족도의 지표로 만드는 것은 내 삶을 평가하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식이다. 숫자만큼 명확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명확성은 숫자로 포괄할 수 없는 삶의 다양한 영역을 배제한다. 그리고 그 명확성 때문에 타인의 삶과 내 삶을 단순하게 비교하기 쉽다.
그런 연유로 나는 내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채우려고 했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성적보다는 공부 계획을 지키고 학기별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집중했다. 몸무게를 신경쓰기보다는 운동의 즐거움과 건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직업 선택에 있어 돈만큼이나 사회적 의미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인고. 애플워치 운동기록은 다시 나한테 너무 중요한 숫자가 돼버렸다. 이걸 알아차리기까지 근 6개월이 걸렸다.
어느 순간 수영을 하는 행위만큼이나 애플워치에 기록된 운동량이 중요해졌다. 킥 훈련을 많이 한 날은 그만큼 운동량이 기록되지 않아 아쉬웠다. 실수로 애플워치를 놓고 간 날은 이 운동이 다 기록도 되지 않는다니! 하고 짜증이 났다. 운동한 것은 내 몸에 다 남는데, 내 근육이 되고 심폐지구력이 되는데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애플워치의 기록이 중요했다.
6월에는 쉬는 날이 두 번이나 있어서 그만큼 운동량을 채우리라 다짐했다. 쉬는 날인만큼 평소보다 많은 양의 훈련을 준비했는데 아뿔싸 두 날 모두 애플워치를 두고 온 것이다. 수영 가는 길이 그렇게 짜증나고 나 자신이 한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득 수영장에 들어가니 애플워치 기록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싶어 수영장 가는 내내 짜증냈던 나 스스로에게 약간 무안해졌다.
내가 최근에 고민하는 '인증문화'가 나에게도 스며들었나보다. 딱히 어딘가에 운동량을 인증하지는 않지만 나 자신에게라도 숫자로 확인하고 인증하고 싶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흡족할만한 운동량은 나 스스로가 '갓생'을 살고 있는, 경쟁력 있는 개인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신자유주의가 상정하는 개인의 경쟁력은 문화자본주의와 만나 다양한 형태의 '인증문화'를 만들었다. '갓생(God+인생)살기' 마케팅, 전시회의 포토존 확대,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문화, 바디프로필 산업 등이 대표적 예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을 활용하여 정리해보겠다.(논문 다 쓰면..)]
이런 문화들을 그 자체로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위험해 보인다. 첫째, 소비주의적 문화정치는 문화의 경제적 식민화에 소비대중이 자발적으로 동조하게 만든다. 둘째, 개인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개인 주체 호명 방식은 필연적으로 능력주의의 그늘에 있다.
신자유주의의 도래가 경제성장의 에스컬레이터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 간 보았듯 경쟁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극소수를 제외한 다수는 실패자가 된다. 경쟁의 강조는 능력주의를 내면화하게 만들고 '공정'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킨다.
늘 이런 말을 하고 살지만 나 역시 신자유주의의 매트릭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그것이 애플워치 기록에 연연하게 된 이유일 게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수영에서 숫자가 가장 중요한 영역이 돼버렸다.
이토록 무지하고 연약한 인간이지만 삶을 숫자보다는 다채롭게 채워나가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피곤한 사유를 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