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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by 청천

미련(未練)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면,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얼굴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아니, 사실은 얼굴이라기보단 그 순간의 감정이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가 한때 붙잡고 있었던 그 순간들. 그 순간들이 바로 ‘미련’(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있는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이 미련은 흔적을 남긴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날은 그 흔적이 물결처럼 밀려와 마음 한구석을 흔든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지만 이루지 못했을 때, 혹은 더 잘할 수 있었던 일을 후회할 때, 미련은 우리를 조용히 찾아와 속삭인다.

"그때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좀 더 용기를 냈더라면."


우리는 미련을 부정하고 싶어 한다. 미련이란 단어에는 어딘지 모를 부끄러움과 후회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련이란 감정은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미련이 없다면 우리는 지나간 것들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삶의 과정을 쉽게 흘려보내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미련을 영원히 붙잡고 살 수는 없다. 미련은 ‘다시 볼 수 없는 창문’과 같다. 그 창 너머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웠더라도, 이미 지나가 버린 순간이라면 그 문을 두드린다고 해서 다시 열리지는 않는다. 그 창문 앞에 오래 서 있어 봤자 과거의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련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내 생각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미련을 부정하지 말자.

우리가 품은 미련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그만큼 무언가를 소중히 여겼던 증거다. 사랑했던 관계든, 실패했던 꿈이든, 그 모든 것이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남겨진 것이다. 미련을 나약함의 표식으로 여기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았는지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이자.

또 하나는 미련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길잡이라는 생각이다.

미련이 남는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과거에 놓쳤던 기회나 실수에서 교훈을 얻고, 다음번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다. 미련을 발판 삼아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그 감정은 단순한 후회가 아닌 성장의 증거가 된다.


끝으로, 미련을 품되, 거기에 머물지 말자.

미련이란 두 손에 가득 쥐고 있는 모래와도 같다. 더 꽉 쥐려고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이제는 놓아줄 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손을 펴고 그 모래를 바람에 날려 보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더 가벼워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미련을 통해 삶의 중요한 진실 하나를 배우게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간다.’는 것을...

좋았던 순간도, 아팠던 기억도, 결국 시간 속에 녹아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품었던 미련은 그 모든 순간들이 모이고 쌓여서 오늘의 나로 만들어주었다는 흔적이다. 그러니 미련 앞에 너무 애써 외면하거나, 혹은 너무 붙잡지 말자. 그저 조용히 마주 보고, “그래, 나도 그때 참 간절했지.” 하고 고백해 보자. 그리고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자. 미련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향한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으니...

미련을 품었던 그 마음이 결국 더 나은 내일로 이끄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미련을 가볍게 놓아주자. 우리는 여전히 길을 걷고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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