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소풍이라는 두 글자만 들어도 어린 마음은 날개라도 단 듯 설레곤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소풍 일정을 알려주던 순간, 교실 안은 이미 들뜬 바람으로 가득 차곤 했다. 책상 위에는 연필 대신 웃음이, 공책 대신 수다가 놓였다. 전날 밤이면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꺼풀은 좀처럼 내려앉지 않았다. 내일이면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곳을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은 쿵쾅거렸고, 마음속에는 수많은 상상들이 자라났다. 어디를 가게 될까, 무슨 풍경을 보게 될까, 어떤 놀이를 하게 될까. 아직 오지 않은 날이지만 이미 다녀온 듯 기쁨이 넘쳐났다.
그 기대감의 중심에는 도시락이 있었다. 평소 식탁에선 보기 힘들었던 삶은 달걀 한 알, 깨끗이 씻어 넣어주신 사과 두 알, 때로는 비닐에 꼭꼭 싸 넣은 박하사탕까지. 어머니는 소풍날만큼은 평소에 주시지 않던 귀한 음식을 아낌없이 담아주셨다. 김이 솔솔 나는 김밥, 칠성 사이다 한 병. 그것들은 어린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먹거리, 마실거리였다. 그 도시락을 륙색에 넣는 순간, 소풍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풍날 아침, 교정은 다른 날보다 더 활기찼다. 알록달록한 가방을 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며 줄을 섰고, 선생님은 우리를 인솔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셨다. 시골길을 걷는 동안 혹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창문 밖 풍경은 금세 달라졌다. 매일 보던 교실과 동네 골목 대신, 끝없이 펼쳐진 논밭과 파란 하늘, 조금은 낯선 풍경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떤 아이는 노래를 부르고 어떤 아이는 벌써 간식을 꺼내 먹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우리는 마치 세상에 풀려난 새들처럼 뛰어다녔다. 평소에는 쉽게 가보지 못하는 들판과 숲길을 함께 걸으며, 풀잎 사이로 맴도는 나비를 쫓기도 하고, 돌다리 위에서 신발을 벗고 시냇물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그 차가운 물의 감촉은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손에 손을 잡고 오르던 오솔길, 산기슭에 앉아 숨을 고르며 나누던 웃음소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은 그날의 자연을 더 빛나게 했다.
점심시간은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다. 나무 그늘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도시락을 꺼내는 순간,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 삶은 달걀을 반으로 쪼개 소금을 살짝 찍어 먹을 때의 그 고소한 맛, 평소엔 비싸서 자주 먹을 수 없던 과일을 한입 베어 물 때의 달콤함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 수 없다. 친구와 서로 반찬을 나누어 먹으며 웃던 기억은 단순한 음식의 맛을 넘어, 마음 깊은 곳에 따뜻한 정으로 남아있다.
소풍은 단순히 놀러 가는 하루가 아니었다. 그것은 친구들과 손을 맞잡으며 함께 길을 걷는 시간이었고, 평소엔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조금 더 빠르게 달리는 아이, 뒤처진 친구를 잡아주는 아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 그 속에서 우리는 우정을 배우고, 함께하는 기쁨을 느꼈다. 그날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지금까지도 선명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돌아오는 길, 친구들의 얼굴은 평온했고, 노을은 하루의 끝을 따스히 물들이고 있었다. 손에 쥔 빈 도시락통은 이제 더 이상 무겁지 않았지만, 마음은 추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날의 풍경과 웃음소리, 그리고 달콤한 과일 한 조각까지, 모두가 내 마음속의 보물 상자처럼 남아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소풍은 그저 잠시의 나들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만이 누릴 수 있었던 가장 순수한 행복이었고, 세상과 친구들을 향한 호기심과 사랑을 길러주던 시간이었다. 평소에 쉽게 가볼 수 없던 곳을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맛보며, 서로의 웃음을 나누던 그 경험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남당산, 독산, 동지산, 숭림사... 많이 변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