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인정하는 것
우리는 모두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어려운 사람도 있고, 회사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결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 떨어질까 봐, 남편과 또 싸울까 봐, 저 사람이 날 좋아하지 않을까 봐, 아이의 선생님께서 아이가 문제가 있다고 말하진 않을까 등등. 이런 수많은 두려움들은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아이가 방과 후 수업이 끝나고 미니 오렌지 가재를 가지고 왔다. 선생님께서 집에서 길러 보라고 보내주신 거다. 지난주에 이미 공지를 해주신 상태라 수조와 자갈, 스펀지 여과기 등을 주문해 놓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수돗물을 하루 정도 받아놓는 걸 하지 못했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가재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 줄 생각에 신이 나했다.
“엄마, 수조랑 돌이랑 다 배송이 왔지? 우리 얼른 가재 옮겨주자.”
나는 그 순간 아이가 실망을 할 게 무척 두려웠다.
“응. 그런데 물을 하루 동안 받아놓질 못했어. 일단 네가 담아 온 물로 수조를 만들어 볼까?”
아이의 실망을 방지하기 위해 선수를 쳤다.
다행히도 아이는 수긍하며, “응 엄마 그렇게 하자.” 고 했다.
하지만 물의 양은 큰 수조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거기에 새로 산 돌을 제대로 씻지 않고 깔았더니 물이 뿌예져 버렸다.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엉엉)~ 가재는 깨끗한 물에 살아야 하는데 이러면 가재 죽는단 말이야. 어떻게 해~(엉엉).”
“울지 마. 그럼 다른 방법이 있는지 엄마가 한 번 찾아볼게.”
“엄마~ 안된단 말이야. 물이 이렇게 더러워지면 안 돼.”
아이의 뾰족한 울음소리를 들으면 내 귀는 자주 아프다. 그날 따라 신경이 더 거슬렸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귀에 거슬리는 소리지름을 참지 못하고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는 널 도와주려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너는 화만내고, 안된다고만 하면 엄마가 널 어떻게 도와주겠어? “
고작 9살짜리 아이 앞에서 부끄럽게 화를 냈다. 하지만 그건 내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아이가 9살이면 엄마 나이도 9살. 우리는 같이 자란다.
가재 사건 외에도, 본인이 만든 로봇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아 아이는 저녁 내내 징징 거렸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엄마, 오늘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왜~? 학교에서도 무슨 일이 있었어?”
“응, 친구가 맛있는 과자를 줬는데 다른 친구가 달라고 해서 나눠줬거든. 근데 너무 많이 줘서 내가 먹을 게 없었어.”
“그래서 슬펐어? “
“응..”
학교에서도 슬픈 일이 있었는데 집에 와서 가재를 키우려 했더니 죽을까 봐 걱정이 되고, 연이어 로봇마저제대로 동작하지 않았으니.
아이가 슬플 만하다. 좌절감을 많이 느낀 하루였을 거다.
‘아이가 실망할 까봐’ 하는 두려움에 잠식되어 정작 아이의 마음을 보지 못했다. 아이가 원한 건 본인의 슬픈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 거였을텐데. 알아주고 가재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이렇게도 날카로운 대화가 오고가진 않았을거다.
나는 아직도 아이를 품기에는 그릇이 매우 작은 엄마다. 아이의 키가 쑥쑥 자라고 몸무게가 늘고 발이 커지고.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내 마음의 넓이도 성장해야 할 텐데. 영 더디다.
아이는 자기 전에도 “엄마, 내일 아침에 가재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을 하며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렌지 가재는 흐려진 물에서도 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 전날 받아놓은 새 물로 갈아 주었다. 그랬더니 넓은 공간에서 신이 난 듯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탐색하는 가재를 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아이의 기분도 같이 좋아졌다.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