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째 딸의 꼬깃꼬깃 소중한 편지.
어제 저녁에는 남편이 늦게 들어오고 나 혼자 애 둘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불평이 튀어나왔다.
핑계 같지만 35도를 넘는 폭염에 체력적,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혼자 설거지를 하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휴, 아빠는 맨날 늦게 들어오고 너희들은 엄마만 부르고. 저녁시간이 제일 힘들어. 나도 좀 쉬고 싶다."
그렇게 중얼거린 후 분노의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 뒤로 조그마한 둘째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아주 작은 종잇조각을 건넨다.
"엄마, 이거 열어봐요."
고사리 같이 작고 오동통한 귀여운 손. 너의 손을 잡아 쪽지를 건네받고는 열어 본다. 그곳에는 예쁜 하트 얼굴에 웃는 눈코입, 그리고 또박또박 편지가 쓰여 있었다.
"엄마, 나를 보호해 줘서 고마워."
내가 6살을 보호해 주고 있다니, 나는 너를 어떻게 보호해 주고 있는 걸까?
아이가 스스로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왜 보호한다고 생각했을까 싶기도 하다가 이 편지의 의미는엄마가 힘든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 노력해 줘서 고맙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다. 언제나 속 깊은 우리 둘째. 가끔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나간 건 아닐까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엄마, 나는 엄마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어."
"그럼 지금 엄마 마음 어떤지 맞춰볼래?"
"음.. 엄마는 지금 행복해."
ㅎㅎㅎ
언제나 엄마 눈치를 살피며 기분이 좋지 않은 거 같으면 위로하려 해주는 우리 둘째. 그 소중한 마음에 나는 가끔 부끄러워진다. 나는 이 아이보다도 못한 엄마인 것 같다. '너는 나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나보다 낫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아이가 본인보다 엄마를, 언니를, 친구를 먼저 생각하다가 혹시 본인을 잃으면 어쩌지? 성격적으로도 배려심 많은 아이지만 둘째로 태어난 위치 때문에 더 그럴까 봐 걱정도 된다. 섬세한 언니를 두어서 언니의 화를 받아내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동생인 네가 언니 말을 잘 들어주면 좋겠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나의 대처도 불만이다.
사실, 아이들의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훈육하는 것이 옳은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오은영 박사의 훈육법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런 방법은 특정한 아이에게 통하는 거지 우리 아이들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그 이후에는 아이들이 싸울 때마다 아이들의 '마음'에 집중하니 조금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 같다.
어른인 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미숙하다. 가끔은 감정을 통제하기 어렵기도 하고, 아이들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반성하고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고 나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게 되었고, 글을 쓰고 나서 아이들의 감정과 행동을 더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인 내가 단단히 중심을 잡고 마음의 소리를 함부로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것이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두껍게 슬퍼해야 한다. 두툼하게 말해야 한다. 어린이처럼 무겁게 애도해야 한다. 인색함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해 버리지 않도록 공동체의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감각이다.
- 김지은, <어린이는 멀리 간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