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사이의 말 이란
나는 어릴 적부터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잘 받는 아이였다. 유리멘털 중에서도 최고의 유리멘털이었다고 해야 할 정도로 아주 사소한 말에도 마음에 스크래치가 생겼다. 아마 이런 성향은 타고난 성격일 것 같은데, 나의 엄마가 아빠로부터의 칼 같은 말에 자주 상처를 받으셨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말을 좀 많이 하시고 화가 날 때는 말을 막 하시는 편이었던 아빠와는 다른 사람을 만나야겠다 싶었다. 말을 많이 하면 아무래도 상처받을 확률이 크므로.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건 소개팅에서였다. 소개팅을 몇 번 하고 나니 이 사람은 과묵한 편에, 필요한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 과묵함 속에 있는 따뜻함이 맘에 들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점도 참 좋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점을 이 남자는 가지고 있었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는 노래도 있지 않은가. 매력적인 반대 성향에 끌려 우리는 결혼을 했다.
살다 보니 말이 생각보다 더 없었다. 친구들과의 자리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았지만 나랑 둘이 있을 땐 말수가 정말 적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단답형이었다. 수다스러운 남편을 바라지 않았으므로, 그래도 좋았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니 내 마음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애정을 바라는 편이었던 나는 말로써 애정을 채워주길 바랐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어떨 땐 말뿐이라도 고운 말을 해주길 간절히 바랐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신혼 초에 많은 기대를 했고, 그가 바뀌길, 그는 내가 바뀌길 기대했다. 서로가 서로를 그대로 인정하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 결혼 9년 차인데 아마 둘째를 낳고 나서부터 서로를 인정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결혼 4년 차는 됐을 때다. 지금은 예전처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심하게 싸우는 경우는 많이 없지만 가끔은 나의 본성이 올라올 때가 있다. 내 몸과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을 때가 그렇다. 몸과 마음이 힘들면 나도 모르게 고운 말, 사랑의 말을 바라게 된다. 그 말 한마디로 힘을 낼 수 있으니까.
남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하늘로 솟아올랐다가도, 또 다른 한 마디에 지하로 꺼지는, 나는 아직도 유리멘털이다. 가끔은 말이나 감정에 좀 무딘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세상 살기가 더 편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좋은 말로 하면 섬세하고 나쁜 말로 하면 예민한 성향이라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상처를 받으니까. 어른이 되어 많이 무뎌졌다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그래도 이제는 그 마음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새살이 돋게 하는 데까지 시간이 짧다. 예전에는 삐져있는 기간, 말 안 하는 시간, 즉 냉전기간이 일주일이 넘을 정도로 길었던 적도 있는데 이제는 며칠 만에 풀리기도 한다.
부부간에도 말 연습을 집중적으로 하는 기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고운 말, 사랑의 말도 직접 입으로 내뱉어 봐야 실전에 적용할 수 있을 테니. 그래서 부부 워크숍 같은 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사람이 한 번에 바뀌긴 어렵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게 부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