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내 마음이 허전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글쓰기에 집중했고 나만의 작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집중해야 할 것이 생기다 보니 그 외 다른 것들은 평소보다 작게 느껴졌다.
매일 아침 글쓰기, 그리고 다음엔 독서와 필사, 운동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나 자신을 잘 챙기고 있는 거 같은데도 왜인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남편과의 정서적 교류가 매우 부족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동안 남편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 반복되는 야근, 그리고 회식으로 인해 우리가 얼굴을 볼 수 있는 건 아침에 출근할 때 잠깐, 아니면 자다 깨서 잠깐 뿐이었다. 이 정도면 같이 사는 룸메이트 정도로만 봐도 될 정도로.
내가 같이 일을 할 때는 서로 많이 힘들고 바쁘니까 이런 상황이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둘 다 자신의 안위를 챙기느라 할 일만 하고 쓰러져 자느라 바빴다.
그랬는데 한쪽이 여유가 생기니 둘 다 모른 체 하고 있었던 ‘정서’란 영역이 고개를 들었다. 여유가 있는 쪽인 내가 먼저 허기짐을 느꼈고 남편에게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는 상황임을 충분히 공감하니까 강요할 수도 없었다.
그랬는데 이번 주말에는 정서적 교류가 아주 잘 이뤄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주말에 남편의 온전한 휴식을 보장해 주었고, 그 시간을 통해 남편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와이프의 목소리를 덜 들어서 인 듯^^)
거기에, 나도 아이들을 채근하는 마음을 좀 더 내려놓고 편안하게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아마 이 마음이 남편에게도 전달되었는지 모른다. 부모가 둘 다 통제와 규율을 중요시하는 스타일이라 둘이 같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확실히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다.
그런데 내가 먼저 마음을 내려놓으니, 남편도 함께 내려 놓고 그 분위기에서 아이들도 편안했을 거다.
오늘은 내내 부드러운 말투로 그와 대화했고, 그를 이해하려 했다. 아이들에게도 거의 소리 지르지 않고 자율성을 그대로 두었다. 아이들이 온 집안을 어지르며 장난치는 거 같았지만 오히려 내가 눈을 질끈 감고 낮잠을 자버렸다.
부부의 사이는 종잇장처럼 얇다. 이 말은 언제든 찢어질 수도 있지만 얇은 만큼 서로의 거리가 가깝다는 거다. 회복하기가 쉽다. 두꺼운 종이나 책은 휘게 하거나 접어서 모양을 변형하기 어렵다. 얇으면 변형도 쉽고 테이프로 다시 붙이기도 좋다.
지금 혹시 남편과 싸웠거나 냉전기간을 보내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드리고 싶다. 부부의 사이란, 금방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리이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기다려 보라고. 그럼 어느새 나도 모르게 가까워진 그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