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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통제한다는 것에 대하여

by 보나


한 달 전, 우리 집에서는 이번 주 일요일 엄마의 생일에 무얼 먹을까? 에 대한 아주 짧은 토론이 있었다. 토론이라고 하기에도 그렇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고, 첫째인 9세 딸에게 의견을 한 번 더 묻는 아주 간단한 절차였다.


"자기 생일날 뭐 할래?"

"우리 뷔페 먹으러 가자. 첫째가 좋아해."

"에이~ 자기 먹고 싶은 거면서 뭘 또 첫째가 좋아한대."

"아니야 진짜 좋아해. 첫째야~~~~~"

"너 뷔페 가는 거 좋아하지?"

"엄마!!! 응 나엄청 좋아해. 엄마 생일날 뷔페 가자!!!!"


이렇게 첫째의 완전 동의로 우리는 주말에 뷔페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때 둘째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못했다. 아직 6세라는 이유로? 아니면 첫째의 의견이 중하다는 이유로?


"그래 말해 봐.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아이에게 따뜻하게 묻는 순간에도 어른들 사이에는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뜻이 수용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챈 어린이는 떼쓰기로 대응하기 시작하고 어른들은 아이가 자신들의 중요한 논의를 방해한다고 느낀다. 습관처럼 "조용히 좀 할 수 없니?", "너는 네 생각만 하는구나." 같은 말을 건넨다.

(중략)

"어른 말씀에 끼어드는 것 아니다."라고 꾸중 들으며 자란 어른 세대는 자신들의 아이만큼은 존중하면서 키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어린이가 능동적으로 나오면 당황한다. 어린이 입장에서는 겉치레로만 존중받는 경험이 늘어난다.
- 김지은, <어린이는 멀리 간다> 중에서


<어린이는 멀리 간다>에 나오는 위 일화를 어제 우리 집에 있었던 일로 각색해 본다.


"첫째야, 너도 뷔페 좋아하지?"

"응, 엄마 우리 주말에 뷔페 먹으러 가자!"

"응 알겠어. 엄마가 찾아볼게."

(아이가 검색을 하는 내 핸드폰 화면이 보이는 쪽으로 온다)

"에이 이건 엄마가 찾을게. 넌 저리 가서 책 읽고 있어~."

"엄마, 나도 같이 찾을래."

"아니야, 이건 엄마가 찾아야 하는 일이야. 엄마가 찾고 알려줄게."

(시무룩하게 자기 방으로 향하는 첫째)


이미 내가 결론을 내리고 아이에겐 통보하게 되는 상황. 겉치레로만 존중받는 경험이란 이런 거일 거다.

아이가 핸드폰을 보는 것도 걱정스럽고, 옆에서 이런저런 말을 하면 귀찮아지기도 하니 내가 미리 차단하려는 거다. 심지어 위 대화에 둘째는 없다.


아이를 존중하면서 키우고 싶다고 하면서도 가끔은 통제하려 한다. 내 눈앞에서 통제가 되는 게 마음이 놓이고 편하기도 하다. 나는 통제형 부모에 가까운 듯싶다. 아이는 관상용 어린이가 아닌데도 나를 위해 예쁘게만 있어주고, 엄마엄마를 그만하길 바라고, 아무 말 없이 잘 먹고,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어린이는 어른의 기분을 달래기 위한 관상용 식물이 아니며 장기 투자 펀드도, 인간 보험도 아니다. 학교는 그들에게 남겨진 거의 마지막으로 안전한 공간이다. 우리가 널리 분양해야 하는 것은 어린이의 안전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 김지은, <어린이는 멀리 간다> 중에서


어제는 딸 둘이서 나를 자꾸 부르는 것에 지쳐서 이런 제안을 했다.


"얘들아 이제부터 30분 동안 엄마 부르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거야. 알았지? 엄마 부르지 않기 타임 시작!"


이 말에 첫째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둘째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난 엄마 안 부르면 안 되는데.. 엄마 20분만 하면 안 돼?"


막내답게 징징징 울먹 거렸지만 나는 동하지 않고 30분을 유지하기로 했다. 둘째에게 닥친 난관이었다. 엄마를 부르며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게 낙인 막내. 막내는 입이 한시도 쉬질 않아 먹는 게 다 입으로 나가는 게 아니냐는 시어머님의 말씀이 있을 정도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를 부르지 말라고 했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겠지. 하지만 그렇게 엄마 부르기 휴전 선언을 하고 나니, 확실히 10분 정도는 나만의 시간이 생긴 느낌이었다. 앞으로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귀가 조용하고 마음이 평화로웠다.


물론 평화는 10분 만에 끝났다. 둘째의 징징거림으로 내가 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도 아이를 통제하는 것에 속할까? 아직도 고민이 되지만 엄마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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