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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모든 걸 이긴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by 보나

“이제 연산 시작해 보자.”


몇 문제를 풀더니 멍한 눈으로 딴생각을 한다. 한참을 다른 생각을 하더니, 다시 문제를 푼다. 또 딴생각을 한다. 결국 집중하면 10분 안에 끝날 수 있는 연산 2장을 30분 넘게 풀었다.


속이 답답하다. 화가 올라온다.




수학 문제를 풀 때마다 집중력이 사라지는 아이를 보며 옆에서 지켜보는 나 자신이 너무 힘들었다. 왜 풀 수 있는 문제를 코앞에 두고 풀지 않고 멍을 때리는 걸까? 왜 좀 더 빠르게 해내고 빨리 쉴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엄마가 옆에 있기를 바라는 아이의 모습.


나는 옆에 있다 보면 점점 화가 나서 아이에게 잔소리만 하게 된다. 그럼 아이는 또 시무룩해지고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 과정이 지겹도록 반복됐다.


내가 너무 아이를 어떤 틀에 맞춰놓고 생각하는 걸까?


2학년이면 이 정도의 문제는 10분 안에 풀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당연하다는 기대치가 있었다. 아이는 로봇이 아닌데 이 정도 공부 했으면 당연~히 아웃풋이 나와야 한다는 나만의 생각이었다.


박혜란 작가님의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이는 스스로를 키울 줄 안다. 아이들을 키우는 시간은 정말 잠깐이다. 그러니 그렇게 비장한 자세를 잡지 말고, 신경 곤두세우지 말고, 마음 편하게, 쉽게, 재미있게 그 일을 즐겨라. 부모 마음으로 키우지 말고 손주 보듯 해라. 그러면 만사형통이려니.”


나는 처음에 이 책을 보면서 생각했다.


"흥! 믿는 만큼 자라다니 너무 이상적인 책이잖아! 실용적인 방법을 가르쳐 줘야지 뭐야." 하며 비판했었다.


티쳐스 2의 양소영 변호사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아이가 아니라 옆집 아이 키우듯이 해라.

엄마가 시간을 정해놓고 몇 분마다 타이머를 재면서 공부시간, 쉬는 시간을 정하는 걸 정말 안 했으면 좋겠다.


송재환 작가님은 <상위권 아이로 만드는 초2 완성 공부 법칙>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아이의 인생이 이름 없는 잡초처럼 될까 지레 짐작해 두려워하는 부모는 자녀가 땅이 기르는 풀만큼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아이가 지금 당장 공부를 못하더라도 분명히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부모보다 훨씬 복된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는 긍정적 신호가 결국 아이 인생을 복되게 만드는 것이다.

부모가 송신탑이라면 자녀는 수신탑이다. 부모가 신호를 보내면 자녀는 그것을 받는다. 그리고 받은 그대로 세상을 향해 다시 신호를 보내고 그렇게 살아간다.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왜 이렇게 박혜란 작가님의 말과 송재환 작가님의 말, 그리고 양소영 변호사님의 말이 와닿았을까? 머리로는 아이를 믿어줘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행동은 다르게 하고 있었던 거다.




일단 내가 정한 시간표 대로 움직이는 아이의 학습이 좀 밀리더라도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잔소리를 줄였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자기만의 취미생활을 시작한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동생과 역할 놀이를 한다. 둘이 분명 사이가 안 좋았었는데 화기애애하다.


그 상태로 며칠을 두다가 아이에게 조금씩 자율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연산은 3장이 버겁다고 2장으로 줄여달라고 하여 줄여주었다. 영어책 읽기는 엄마의 기대는 하루에 10권씩 읽는 거지만 아이와 의논하여 3권으로 줄였다. 그리고 학원에서 빌려온 책과 본인이 보고 싶은 책을 섞어서 읽도록 했다. 학원에서 빌려온 책은 읽은 후 퀴즈를 풀어야 하지만, 읽고 싶은 책은 그런 게 없었다. 그리고 한글책은 만화로 된 학습만화가 좋다고 하여 마음껏 읽게 해 주었다.


아이는 한결 밝아졌고, 매일 부리던 짜증도 확 줄었다. 나는 밝아진 아이를 보며 감사했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한 점이 있으면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같이 깔깔거리고 웃어 주었다.


"엄마, 엄마 이거 봐봐. 진짜 웃겨. 얘가 이런 말을 하니까 이런 표정을 지었어."


어른인 나는 사실 웃기지 않지만 순수하고 해맑은 아이의 눈에는 배꼽을 잡을 만큼 웃기고 재미가 있었나 보다. 나도 같이 웃고 관심을 가지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제는 갑자기 스스로 연산을 하고 나오는데 10분 안에 다 풀고 나오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그렇게 옆에서 지적하고, 행동을 고치려고 잔소리를 해도 되지 않던 연산 속도가 학습이 아닌 다른 부분에 신경을 써 주었더니 자동으로 고쳐져 버렸다.


역시 아이는 믿어주는 만큼 자라는 구나. 엄마가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그 눈빛 하나로 변하는구나.





어제 아이 수학학원에서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손주를 기다리는 할머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본인의 자녀들은 미국에서 자랐는데 미국은 중학생이 되자마자 수업시간에 계산기를 준비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아이들이 푸는 기계적인 연산, 구구단 등이 나중에는 의미가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우리나라도 몇 년 뒤에는 학교에서 계산기 준비하라고 할 거예요."


AI 시대에 연산이 뭐라고 이렇게 머리를 부여잡고 아이와 사춘기 같은 분위기를 내뿜으며 힘들게 지낼 일인가. 아직 2학년이다. 그럴 시간에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자. 나부터 휴대폰 중독에서 빠져나와 아이와의 일상을 나누며 대화에 집중해 보자. 지금은 휴직 중이니 가능한 일이니, 이때만 가능한 일들을 마음껏 해보자. 결국 사랑이 모든 걸 이긴다.


얼마 전, 아이 보약을 지어주고자 갔던 한의원에서 만난 상담사 분이 나에게 해 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아이가 똑똑하잖아요. 아이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훌륭하고 뭐든지 될 수 있어요. 그런 아이를 제한하는 말을 하지 마세요. 긍정적으로 이야기하세요. 조금 전에도 아이가 '허약 체질이라서', '아이가 예민해서'라고 말했잖아요.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이의 대답을 절대로 대신해 주지 마세요. 아이가 대답하기를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그랬구나'하고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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