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점이 뭘까?
휴직 전 워킹맘 시절과 휴직 후 잠시 전업맘이 된 지금 달라진 점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1.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무엇에 쫓기듯 살던 삶, 그게 워킹맘 시절의 나였다. 잠시라도 회사 메일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고 집에서 일을 하는 날에도 메일은 물밀듯이, 쉼이 없이 밀려왔다. 하나의 메일에 회신을 하고 나면 다음 메일이 또 쌓이고 쌓이고, 모든 일을 처리하고 한숨을 돌리려고 하면 또 회의가 잡혔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고 쪼개가며 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했다.
그랬으니, 매번 회사의 일이나 아이 학교나 어린이집과 관련된 일들은 바로바로 처리하는 게 내 우선 과제였다. 바로 처리해 버려야 다음의 일이 쌓이지 않으니까. 쌓이지 않아야 여유를 가질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놓치는 게 없었다.
지금은?
오히려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수많은 우선순위 낮은 것들은 다 흘려보낸다. 그러다 보니 키즈노트에 대한 회신이나 학교에서 오는 알림을 오히려 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놓치는 것들이 있다. 이 말인즉슨, 시간이 많다고 해서 평소에 못했던 일들을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시간이 많으면 아이에게 더 잘해줄 수 있을 텐데..' 이런 생각도 다 마찬가지이다. 모두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거다.
오히려 시간이 많으면 많다는 그 여유로움으로 인해할 일을 더 미루게 되고 안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2. 주말에 늦게 자도 다가올 월요일이 두렵지 않다.
워킹맘 시절에는 일요일 밤이 다가오면 오늘이 제발 토요일 저녁이길 바랐다. '하루만 더 주말이 있었으면' 했고, 다음날 먹을 아침메뉴, 아이들의 준비물, 숙제 등을 잘 챙겨놨는지 자기 전에 다시 한번 체크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바로 달려갈 수 없는 엄마이니 하나라도 빠진 게 있으면 안 되었다.
또 아이들이 아프거나 하면 다음날 휴가를 써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밤새 고민을 하다가 제대로 잠을 못 자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일요일 밤 잠이 잘 오지 않았고, 월요일 아침에 알람을 듣고 일어날 때면 잠을 잔 건지 못 잔 건지 비몽사몽 상태로 일어난 적도 많았다.
이제는 일요일 밤에 늦게 자더라도 부담이 없다. 다음날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서 아이들 준비물을 챙겨도 되고, 밥도 아침에 일어나서 해도 된다. 내가 집에 있으니 아이들이 늦잠을 자더라도 좀 여유롭게 깨워서 간단히(?) 라도 먹이고 학교를 보낼 수도 있다. 일요일 밤의 중압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좋다.
3. 남편이 진심 안쓰럽게 느껴지고 고마우며, 화를 덜 내게 된다.
육아휴직을 하니 우리 집에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은 남편 한 명뿐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는 게 당연하고 돈을 벌어오는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맞벌이로 같이 벌 때는 서로의 지출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제는 한 곳에서 모든 지출을 하게 되니 서로 소비에 대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의 지출을 남편이 더 많이 알게 됐는데 이건 분명 좋은 점이다. 왜냐면, 아이들의 교육비, 식비는 모두 내 월급으로 부담했었기 때문에 실제로 생활비가 생각보다 많이 든다는 걸 남편도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편이 야근을 하거나 잦은 회식으로 늦게 들어올 때 원망을 많이 했었다. 나 혼자만 애를 키우나, 왜 같이 돈을 버는데 나 혼자만 고생해야 하나 하는 원망도 많이 했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좀 크고 내가 모든 육아와 평일의 가사를 전담하더라도 나 혼자서 아이들을 컨트롤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러니 나 혼자 아이들을 챙기고 재우고 할 수 있으니, 남편은 늦게 들어오더라도 원망할 일이 없다.
오히려 "고생이 많네, 힘들지?", "건강 챙겨가며 일해~"이런 말들이 절로 나올 때도 많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4. 아이들을 진심을 담아 예뻐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더 많이 화를 내고 싸우게 된다.
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엄마이니,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아이들도 엄마가 항상 집에 있다는 안정감 때문인지 엄마에게 의존하려는 것도 같지만 분명 더 밝아지고 안정적으로 변했다. 학교 끝나고도 엄마와 함께 원하는 걸 할 수 있고, 학원을 가는 중간 시간에 간식도 직접 도시락통에 싸서 정성스럽게 먹일 수도 있다. 이런 안정감은 아이들에게 정말 큰 것 같다.
또 하나의 좋은 점은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좀 더 여유롭게 조정하고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을 많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아이를 더 오래, 여유롭게 관찰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는 책도 보게 되고 빈둥거리며 본인의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워킹맘 시절에는 내 퇴근 시간에 맞춰 학원 스케줄을 연달아서 꽉꽉 채워놓고 아이가 그 스케줄을 따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몰랐다. 이제는 1학년 때 아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퇴근해서 만날 때마다 얼굴에 다크서클이 왜 이렇게 짙었는지를 알았다. 그 시기에 감당할 수 있는 체력에 맞춰 학원이든 뭐든 해야 했는데 워킹맘이니 그럴 수가 없었다.
반면,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 그만큼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된다. 워킹맘 때는 시간이 짧아 보지 않았어도 될 아이의 많은 면들을 보게 된다. 공부 습관에 대해 보다 세세하게 잔소리를 하게 되거나, 생활 습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많으니 해야 할 말들도 많아진다.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게 아이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는 걸 깨닫고 요즘에는 최대한 말을 줄여하는 중이다.
5. 씀씀이가 늘었다.
시간이 많으니 무언가를 자꾸 사게 된다. 동네 카페에는 매일 가고, 카페에 갔다가 근처 다이소에도 자주 가게 된다. 몇 천 원을 꾸준히 쓰다 보니 은근히 지출이 꽤 된다. 가끔 외식을 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외출을 했다가도 점심은 꼭 집에 와서 집밥을 해 먹으려 노력한다.
6. 취미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다.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운동까지. 취미생활을 하루 종일 해도 시간이 남는다. 오전에는 주로 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오후에는 아이들 챙김을 하며 중간에 운동을 끼워 넣는다. 그렇게 해서 동네를 돌아다니더라도 무척 여유롭다. 집을 몇 번 들어왔다 나갔다 하더라도 좋다. 이렇게 여유로운 삶이 평생 가능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다.
아직 3개월 차 육아휴직러지만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감을 느끼고 있다. 남은 9개월을 어떻게 보내야 잘 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만 당장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단, 육아휴직 기만에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서 최대한 해보려 한다. 워킹맘이면서도 할 수 있는 일들 보다는 길게 주어진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일, 예를 들면 해외에서 한 달 살아보기, 아이들과 자기 전에 팩 붙이기 놀이, 자기 전 몸놀이, 정성들여 책 읽어주기와 같은 특별한 일들을 꼭 해보고 싶다.
참 좋다, 육아휴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