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잠시 백수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당연하게 쓴 두 번의 육아 휴직, 그리고 이번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를 양육하기 위한 자발적 육아휴직이다.
잠시나마 이렇게 돈을 벌지 않는 무급휴직자로 지내다 보니, 안락하기도 하면서 불안하기도 한 감정이 올라온다. 아직 복직시점까지 꽤 많이 남은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게 놀랍다. 어느덧 9월 말, 이제 추석이 다가오는 걸 보면 올해도 금방 지나가겠구나 싶다. 올해가 금방 지나가면 복직을 해야 할 내년도 금방 다가온다는 것.
이런 생각을 하면 불안하지만 현재에 충실하자며 마음을 다잡는다. 현재의 나는 안락함이 더 크다. 맞벌이 일 때와 비교하면 마음의 복잡함, 혼란스러움,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많은 일들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바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딱 적당한 만큼의 바쁨과 여유가 생겼다. 그 바쁨과 여유마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내 삶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만족스러운 일인 줄 몰랐다. 그동안은 ‘어쩔 수 없잖아’라는 핑계로, 시간을 내 뜻대로 쓰지 못하고, 시간의 노예로 살았다. 사실 어쩔 수 없는 면도 분명 있었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으로서, 주어진 일을 해내고, 그에 따른 성과에 따라 월급을 받게 된다. 이건 모든 직장인들의 숙명과도 같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서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회사에서 주는 일이 나에게 무리한 일이라면 적당히 선을 긋는 것, 사람 사이에서도 좋고 싫음을 분명히 하는 것, 육아의 일부는 이모님께 위임하는 것, 집안일은 기계의 도움을 받는 것 등.
나는 이걸 잘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주는 일들 중 분명 내가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일들도 분명히 ‘거절’의 뜻을 내비치지 못했다. 아이들도 내 손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전전긍긍했다. 집안일도 식기세척기가 못 미더워 사놓고도 손설거지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도 천천히 거절의 뜻을 밝히게 되고 이모님께 일정 부분의 육아를 위임했다. 식기세척기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주는 소중한 가전이 되었다.
나에게 오는 모든 걸 다 받아서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단 한 가지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 순간마다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만이 매 순간을 살아가는 방법인 것 같다.
안락함, 그리고 저 너머의 불안함.
이 둘은 결국 내가 무얼 선택하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까?
결국 주도적으로 산다는 건 세상의 모든 걸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내가 결정한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좋은 일, 나쁜 일, 사람, 상황 등이 나에게 왔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 지 마음을 결정하는 것. 그 결정에 따라 내 마음도 안락함이냐 불안함이냐를 결정하게 되는 게 아닐까?
단 하루만이라도,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