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 44일 차
육아휴직을 하고 나에게 주어진 1년이란 시간을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40대의 시작에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면, 평생의 가능성도 점쳐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멀리 나갔으나 항상 시작은 미약하니, 일단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몇 번의 휴직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루틴 속에 집어넣지 않으면 무지막지하게 풀어지는 사람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 등원 및 등교를 하고 텅 빈 집에 돌아오면 나를 반겨주는 건, 널브러진 옷가지들, 먹다 치우지 못한 밥그릇들, 어젯밤 돌리지 못한 빨래들, 개야 할 빨래들 등이었다. 그런 산더미들 속에서 예전의 내가 택했던 건 일단 '미루기'였다. 눈앞에 보이는 살림들을 미룬 후, 글을 써보자. 한 7년 전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은 다년간의 워킹맘 시절을 겪은 후 생각보다 '사람은 단 시간 내에 집중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기 전 웬만한 소일거리 들을 다 처리해 놓고 집을 나설 수 있다. 아이들 먹은 밥그릇 먹자마자 정리하기, 바로바로 설거지하기, 혹여 설거지할 시간이 없다면 못하더라도 물에 담가 놓기, 뒤집은 채로 벗어놓은 옷가지들 다시 뒤집어 얌전히 개어놓기, 빨래는 눈 감고 보지 않기(?) 등이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만 하고 집을 나서면 나중에 돌아왔을 때도 널브러진 느낌이 들지 않아 기분이 나름 괜찮다. 그리고 전날 밤 미리 글쓰기와 독서에 필요한 준비물이 들어있는 가방을 준비해 둔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그냥 메고 나가기만 할 수 있도록.
이렇게 집을 나설 때의 마음이 정리되어 있는 느낌이 들면 아이들 등교를 마친 후 바로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이 매우 가볍다. 집에 굳이 다시 돌아가해야 할 일이 없으니까. 아마 바로 카페로 향하지 않았더라면 매일 글쓰기도 어려웠을 거다. 집에 돌아와 눈에 보이는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관성이 이끄는 대로 소파에 앉아 몸을 뉘었을 거다. 그리고 SNS를 하며 누구 집 애는 어떻네? 아 우리 아이에게도 이게 필요한가? 하면서 구매링크를 클릭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쓸데없이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점심이 오고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된다. 그런 오전이 나에겐 무척이나 허무하게 느껴졌다.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집안을 상쾌하게 가꾸는 걸로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누군가에겐 청소와 정리가 루틴이 된다. 나는 그런 쪽으로는 취미가 없기 때문에 글쓰기 루틴을 만들었다. 그 루틴을 시작한 이후 벌써 매일의 깨달음 매거진에는 44개의 글이 생겼고, 2번째 브런치북에는 11번째의 글을 쓰고 있다.
매일 쓰는 삶은 어떠한가.
처음에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매거진이냐, 브런치 북이냐를 고민했다. 매거진은 요일이 정해져 있지 않고 알림이 오지도 않으므로 부담이 덜 했다. 브런치 북은 연재 전날이면 항상 알림이 오고, 독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약속을 하는 거라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결론은 나와의 약속을 먼저 지키기로 했다. 그래서 생긴 매거진이 '매일의 깨달음'이다.
살면서 매 순간마다 얻게 되는 깨달음이 있었다. 누군가는 그거 당연한 거 아냐? 왜 그런 간단한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이론으로, 머리로 알기만 하는 것과 '아!' 하고 머리를 탁 치며 깨닫는 건 좀 다르다. '깨달음'이란 걸 스스로 알게 되면 분명 성장한다. 다음번에는 실수로 했던 행동들을 덜 하게 되고, 잘하지 못했던 일에는 깨닫고 난 뒤 다시 한번 제대로 도전해 보기도 한다. 그런 과정이 참 좋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매일의 깨달음을 매일 쓰다 보니, 몇 가지 좋은 점들이 있다.
매일 글을 쓰면 어떤 점이 좋은가?
아침에 아이들로 인해 화가 난 감정들이 글을 통해 정리가 된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다가도 글을 쓰다 보면 풀리기도 한다. 글쓰기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과감히 적용해 보기도 한다. 매일 쓰니, 오늘 쓴 글이 짧아도 죄책감이 덜하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어제 있었던 일이 뭔지 생각하게 한다. 글쓰기는 그냥 자기 성찰의 끝판왕이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글은 읽어줄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데 자기 수련을 먼저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매일 글을 쓰려면 주제들은 어떻게 선정해야 하는가?
매일의 깨달음을 쓰다 보니 내가 깨닫는 주제들이 한정되어 있음을 알았다. 주로 자기 계발, 아이들, 남편, 운동, 사람사이의 관계 등이 주제였다. 주로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글감이 된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거나,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 글을 쓸 수 있는 건 정말 전혀 아니다. 나는 사소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그 일이 바로 글감이 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쓰면 글이 된다. 그래서 주제를 정해놓고 쓰지 않는다. 떠오르는 대로 쓴다.
매일 글을 쓰는 장소는 어디로 해야 하나?
나의 경우에는 스타벅스로 정했다. 공간이 주는 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자체로도 좋았다. 다른 카페보다는 스타벅스에는 혼자 와서 자신만의 일을 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을 보며 나도 열심히 쓰게 됐다. 아침 3시간 남짓의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몰입의 힘을 느끼고 있다. 아무것도 안 했을, 그냥 두었으면 그냥 지나갔을,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잡은 느낌이다.
이상, 매일 글쓰기 44일 차 초보의 이야기를 풀어 보았다. 워킹맘이다가 잠시 백수가 된 아이 둘 엄마가 지금보다 나아지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누가 보면 열심히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 기준으로는 단 시간에 집중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이런 작은 노력이 어디로 향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매일의 작은 습관을 쌓으면서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거다. 스스로가 그렇게 느낀다. 감정이 안정되고, 기복이 예전만큼 크지 않으며, 기복이 생기더라도 제 자리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적게 걸린다. 안정적 루틴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일상에서 무언가 잘 풀리지 않거나, 기분이 울적하거나,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주말마다 나가서 혼자만의 루틴을 행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