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하고 나니 아이의 공부를 봐줄 시간이 많아졌다. 아니 마음의 여유가 많아졌다.
아이가 숙제를 하다가 짜증을 내도 예전보다 더 많이 받아줄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의 총량이 더 커졌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학습을 봐주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일단 아이를 책상에 앉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숙제를 하기 싫어하는 아이는 이때부터 슬슬 시동을 건다.
"이제 들어가서 숙제할 시간이야."
라고 말하면 절대로 한 번에 움직이는 법이 없다.
"알겠어."라고 말을 하고 몸은 느릿느릿 거북이처럼 다른 행동을 한다.
거실에 있는 장난감을 만지거나, 동생이 보고 있는 TV에 집중을 하거나, 하면서 공부방으로 건너가는 데 참 힘들다. 그럼 나는 지켜보다가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만다.
아니, 아까 분명 마음의 총량이 커졌다고 해놓고선 이게 무슨 말인가. 인내심도 늘었지만 버럭 화내는 횟수도 늘었다. 예전에는 화낼 힘조차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조차 없었는데 이제는 화낼 힘이 있으니 더 화를 자주 내는 것 같다. 화를 내지 않기로 다짐하고 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만 나도 사람이니 참 잘 안된다.
아이의 교육에 대해 말을 하자면 참 할 말도 많고 고민도 많다. 언젠가는 교육에 대한 매거진이나 브런치북도 발행해 보고 싶다.
어제는 내가 좋아하는 변호사 출신 정지우 작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있었는데 와닿아서 공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녀의 삶에 대한 '설계 욕망'이 굉장히 강한 것 같다. 부모가 잘하기만 하면, 그래서 아이가 기어 다니기도 전부터 잘 교육하고 양육하기만 하면, 아이를 완벽하게 설계하여 훌륭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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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영상이 나쁘다는 믿음 하에, 거실에서 TV를 치워 버리고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영상을 아예 못 보게 하는 경우도 많다. 몬테소리 같은 서양의 교육법을 가져와서 잘만 쓰면, 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유아기에 아이를 어떤 학습에 최적화된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도 있는 듯하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도, 아이의 매일을 시간 단위로 설계해서 영어, 수학, 국어, 한자 등에다가 운동, 숙제 등까지 모든 것들을 마이크로 컨트를 하면, 아이를 '잘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크게 퍼져 있는 듯하다.
- 출처 : 정지우 작가 인스타그램 글 '자녀를 설계하려는 욕망의 교육에 관하여'
https://www.instagram.com/p/DMMz81vxrOF/?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Wt5djg0M216MGM0Zw==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작가님이 쓴 내용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내 머릿속에 설계된 대로 아이를 마이크로 컨트롤 하려 하고 있었다. 영어학원을 다녀와 몇 시까지는 저녁을 먹고, 30분간 구몬을 하고, 1시간 동안 영어학원 숙제를 하고, 그러고 나서 책을 읽고 자러 가자는 계획을 실행하려 하고 있었다. 아이는 놀 시간이 없다고 울면서 잠이 든다. 아마 하루 종일 놀아도 놀 시간이 부족하다고 할 거다. 저 계획대로 네가 한다고 생각해 봐라 매일매일 숨이 막히지 않겠니? 마음의 소리가 올라왔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어학원의 커리큘럼을 따라갈 수가 없다. 뒤쳐지고야 만다.
반이 레벨업 되는 게 무슨 큰 의미인지, SR 점수가 잘 나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눈앞의 점수에만 연연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이게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받아온 교육이 주입식에 점수기반의 교육이라 다른 교육은 알지 못한다. 그냥 이 방법이 맞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생각에 더욱 더 불을 지피는 건 SNS에 엄마들이 올리는 여러 가지 글 들이다. 아이를 마냥 놀려선 안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하루에 최소한의 학습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내 아이는 이렇게 해서 현재 유명한 자사고, 국제고에 갔다, 등등 유명한 인플루언서 엄마들의 경험담이 계속 올라온다. 또래 엄마들도 비슷하게 하고 있고 이미 대학을 보냈거나 고등의 맘들은 주변에서 만나기 어렵다. 유튜브에서는 집 공부를 꾸준하게 해서 성공한 엄마들이 사례를 올리기도 한다. 이런 유니콘 같은 아이들과 엄마들을 보며 내 아이는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비교하게 된다.
대체 내 아이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단지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은 걸까?
선행열차에 타지 않겠다 다짐하고 그런 영상을 찾아보고 책을 읽으면서 내 행동은 모순적이다. 아주 괴리가 크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거다. 내려놓지 못하는거다.
내 스스로가 좋아하는 게 뭔지 정확히 모르고 공부만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목표도, 목적도 모르고 눈 앞에 주어진 과제들을 해치우면서, 학원의 숙제들을 해내면서 공부만 했다. 결국은 방향을 잃었다. 헤매였고 그동안은 불행했다. 내가 실패했으니 아이는 실패하면 안되나? 공부로 성공하면 아이는 행복해질까? 만약 실패하면 불행해 질 수도 있는 그런 과거를 내 아이에게 되풀이 할 건가?
수많은 생각들이 들지만, 해결책은 없다.
돌고 돌아 원래 하던대로 하자로 귀결된다. 명확한 교육관도, 가치관도 없이 비바람 맞은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정지우 작가님 글에 공감하면서도 그렇게 할 용기는 없다.
이 고민의 끝은 어떠한 실천이 될 것인데 보다 '좋은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결국,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 다수가 하는 방향이 있을 뿐. 그 다수가 하는 방향을 따라가는 게 내 아이를 위한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내 아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는 걸, 오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내 아이는 자기만의 반짝거림이 분명 있을 건데, 그걸 머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해오던 습관을 놓기가 어렵다. 안정적이라 부르는 그 루트를, 실패해도 중간은 간다는 그 루트를 놓을 수가 없다. 이건 필시 나의 문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일은 남들과 다른 용기를 내는 것이다.
그럴 용기가 나에게 있는가? 당신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