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가 표정이 많이 밝아졌더라

by 보나


육아휴직을 한 지 어느덧 두달 째가 되었다.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가고 내 마음은 조금씩 조급해 진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아이들은 잘 양육하는 걸까? 내 인생의 전환을 위한 준비도 잘 되고 있는 건가? 너무 많은 걸 잡으려다 다 놓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 아이 양육을 위해 휴직한다고 해놓고 자기계발 한답시고 스타벅스 와서 돈만 축내는 건 아닌가.




요즘 아이를 전적으로 키우는 엄마들을 자주 만나고 관찰하게 된다.


그녀들은 아이를 낳자마자 본인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일을 그만둔 사람, 첫째 낳고는 일을 했지만 둘째가 생겨 바로 회사를 그만둔 사람, 임신사실을 알자마자 그만둔 사람, 장기 휴직 상태인 사람 등 여러종류의 엄마들이 있다.


어제는 아이를 수영장에 보내놓고 그 곳에 있는 엄마들을 관찰하였다.


아이가 수영하는 모습을 유리너머로 50분 내내 뚫어지게 보는 엄마, 본인이 가져온 책을 읽는 엄마, 동생과 함께 이야기 하는 엄마, 다른 엄마들과 수다를 떠는 엄마 등 다양하게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친한 엄마에게 집에서 가져온 화장품 샘플을 건네는 엄마, 아이친구 엄마와 친구가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엄마의 모습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들을 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이 아닌, 아이를 키우며 사는 삶에 만족한다는 건 어떤 충만함을 줄까?'


'집에 있는 엄마는 아이의 등하교, 학원 라이딩, 중간 간식 정성껏 챙겨주기, 아침, 저녁식사 잘 챙기기, 학원 스케쥴 관리, 건강관리, 방학 계획 세우기, 학습관리, 다른 엄마들과 교류하기 등 이런 것들을 하며 살겠구나.'


이런 삶은 어떨까?


나는 집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단지 위에 나열한 미션들을 행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와의 감정적인 교류, 아이의 조잘조잘 수다를 듣는 것, 학교생활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그녀의 생각에 대해 알게 되는 것, 대화를 통해 보다 깊은 모녀관계가 된다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최근에도 딸과 이야기 하며 우리 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계속 바쁜 워킹맘 이었다면 이렇게 까지 상세히 그녀에 대해 알기 어렵지 않았을까?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의 이름, 학원에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에 대한 어려움, '얌전한'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고 가끔은 혼자서 책 읽는 것도 좋다는 것, 교실은 시원한데 복도는 덥다는 것, 방과 후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 모둠수업시 생겼던 갈등으로 운 적이 있다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도 있다는 점 등.



휴직한 두달 간 딸의 몰랐던 부분에 대해 생각보다 상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유로운 아침 등교시간에도 대화를 많이 하고, 중간 중간 하교 후 학원 이동이나 간식먹으로 가는 길에 소소한 일상 이야기들을 나에게 해주니까.


아이와의 대화에도 '적시성'이란 게 있는 것 같다. 하교 후 바로 엄마 얼굴을 보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이야기 해줄 수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이건 얼른 가서 엄마한테 이야기 해줘야지' 하고 하교를 할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엄마한테 할말이 있었는데 생각이 안난다거나 까먹었다고 했던 적이 많았다. 학교에 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너무너무 궁금했던 적이 많았다.


이미 하교 후 학원 뺑뺑이를 돌고 온 아이에겐 나와 이야기 할 에너지도 없었을 거고 기억도 나지 않았을 거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 당연한 거였다. 그걸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넘겼으니 초저엄마 하기 진짜 쉽지 않다.




매일 아침마다 등교시에 항상 만나는 지인이 있다. 어느 날은 나에게 말한다.


"요즘에 딸 표정이 무척 밝아졌더라?"


"그래요? 그렇게 보이니 다행이네요."


하하 호호 웃으며 등교하는 걸 자주 봐서 그렇게 이야기 한 것 같다. 사실 내가 집에 있어도 동생과 싸워서 인상 쓴 표정으로 학교를 가거나,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무표정으로 손잡고 학교에 간 적도 많았는데. 엄마가 집에 있는 다고 해서 갑자기 많은 것이 크게 변한다거나, 일상이 180도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란 존재에 대해 깊이 알 수는 있게 되는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참 만족스런 하루다.


딸은 오늘도 등교하며 이야기 한다.


"엄마 이따가 간식 싸와줘~"

"엄마가 이따 네가 좋아하는 찹쌀 꽈배기 간식으로 가져갈게."


"응, 엄마. 꼭 잘라서 예쁜 도시락통에 넣어서 포크로 먹게 싸와야 해~"

이런 소소한 일상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에 참 감사한 하루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