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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까투리를 보다가

통제형 엄마

by 보나


주말 아침, 아이들은 EBS에서 '엄마 까투리'라는 만화를 보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나도 슬쩍 보았는데 만화 내용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엄마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궁금증이 생겨 그대로 아이들 옆에 앉아 나도 함께 시청을 했다.




엄마 까투리의 아이들이 양 친구네 집에 놀러 왔다. 양 엄마는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그러고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얘들아 우리 집의 규칙은 밖에서 들어오면 무조건 손을 씻는 거란다. 손을 씻고 2층으로 올라가렴."


"저희 방금 집에서 다 씻고 왔는데요~?"


"그래도 손을 씻어야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단다."


시무룩해진 아기 양의 표정이 화면에 보인다.


친구들이 2층에서 신나게 노는 동안 엄마는 1층에서 아이들을 위한 저녁을 준비한다. 책을 보며 어떤 음식을 해 줄지 고민하는 참 좋은 엄마 같아 보인다.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은 ‘아이를 백점으로 만드는 법’,‘백점 엄마의 건강밥상’과 같은 모범적인 책들이 대부분이다.


"얘들아 저녁 먹으러 내려오렴."


엄마의 부름에 아이들이 내려와 식탁에 앉았는데, 친구들은 뚜껑을 열어보고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양 엄마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서 당근, 브로콜리 같은 야채만 접시에 놓아두었다. 그리고선 말한다.


"우리 집의 규칙은 밥 먹을 때 꼭 10번씩 씹어서 먹는 거야. 그래야 소화도 잘되고 좋단다."


엄마가 이 말을 하자, 또다시 아기 양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이제는 저녁을 먹고 나서 다 같이 2층에서 자야 할 시간. 자려고 모두 누웠는데 아기 양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하는 '잠옷 파티'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다며 갑자기 일어난다. 그리고 베개 싸움을 시작한다. 아기 까투리 친구들은 "너희 엄마한테 혼나면 어떻게 해." 하며 걱정스러워했지만 아기 양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2층의 우당탕탕 소리에 결국 엄마 양이 올라왔다. 그리고 베개 싸움을 하던 중 베개 하나가 엄마 양의 얼굴에 명중! 엄마는 화가 나서 이야기한다.


"너희들 지금 이게 뭐 하는 거니?"


이때 아기양이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엄마, 우리도 우리만의 규칙이 있어요!"


엄마는 평소에 말 잘 듣고 착했던 아기 양이 이렇게 말하자 놀란다. 그러면서 본인이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표정이 어두워지던 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엄마는 그동안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아기 양과 친구들이 마음껏 베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





역시 아이들의 만화에는 교훈이 있다. 20분 정도의 짧은 만화였는데 이걸 보면서 요즘 시대에 걸맞은 교훈을 이렇게 잘 표현하다니 하며 놀라웠다. 그동안 영어로만 영상을 봐야 한다며 한국 만화영화를 멀리 시켰던 내가 너무 편향된 생각을 가진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만화를 보며 양 엄마와 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위해 책을 읽으며 노력하지만 결국 이 노력이 누굴 위한 노력일까. 아이를 위한 게 맞을까?

단지 불안한 나 자신이 불안하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수많은 육아서를 읽으면서도 읽을 때만 '아 그렇지, 이렇게 키워야지' 하고는 책을 덮고 나면 잊는다. 그리고 또 평소와 똑같이 행동을 한다.


나도 만화에 나온 '양 엄마'처럼 아이들에게 규칙을 강조하며 규칙에서 어긋한 행동을 할 때마다 통제하려고 했다. 통제형 엄마였다. 내가 정한 규칙안에 아이를 넣어 놓고 '넌 그대로만 하면 돼, 그대로 하면 넌 편안할 거야' 하며 가두리 양식장과도 같은 행동을 했다. 아이에게 이런 행동이 짜증을 유발한 건 당연한 결과다.

본인도 자유의지가 있는데 자유의지는 없이 짜인 틀에 아이를 끼워 맞추려 했으니...




요즘은 아이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려 무척 노력하고 있다. 공부는 당연히 해야 하는 학생의 도리이므로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단, 아주 기본적인 수학 연산만 조금 시키고, 영어 학원 숙제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시키기로 했다. 그 외의 시간은 자유롭게 놔두며 아이가 어떤 걸 '선택'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방학이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방학 동안 어떤 걸로 채울지를 고민하는 엄마였을 거다. 하지만 이번 방학 때는 어떻게 하면 더 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엄마가 되려고 한다.


"방학 때 무얼 하고 싶어?"


"음.. 요리 레시피가 엄청 많이 들어 있는 책을 보면서 따라 해 보고 싶어."


이번 여름방학에는 네가 진정 원하는 걸 함께 해보면서 즐겁게 깨달아 가는, 어린 시절 방학만 되면 행복했던 그 어린아이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겁이 나니까 익숙한 곳으로만 보내겠다는 건 슬기로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떠나는 아이의 손을 놓기가 쉽지 않다.

그들이 주는 믿음이 우리를 울리고, 우리를 살린다.

- 김지은, <어린이는 멀리 간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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