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깃꼬깃 너의 그림편지
둘째 딸내미는 그림편지를 쓰는 걸 좋아한다. 아이가 하원하고 와서 가방정리를 할 때 보면 가방에는 온통 종이편지들이 가득하다. 엄마, 아빠에게 쓰는 편지,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 언니에게 쓰는 편지, 태권도 사범님께 드리는 편지 등. 알록달록한 색종이나 이면지 등에 예쁜 공주님을 그리고 고사리 손으로 "엄마 사랑해"라고 쓴 글씨가 보인다.
얼마 전에는 안경 쓰고 키가 크며 앞머리가 5:5 가르마인 태권도 사범님의 모습을 너무 똑같이 그려서 사범님이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어머님 제가 이 그림을 보고
아이들에게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저의 특징을 정말 잘 잡아 그린 거 있죠
그림편지를 볼 때마다 그림체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더 귀엽고 섬세해지는 걸 보면 놀랍다. 그 안에 쓰여 있는 짧은 편지글을 가끔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엄마 사랑해"는 기본이고, "엄마 나를 보호해 줘서 고마워" 라던지, "엄마가 최고야" 등등 6세가 하기 어려워 보이는 말들을 쓸 때도 있다. 힘들 때 아이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며 힘을 낸다.
첫째와 둘째의 성향이 많이 다른데 첫째는 딸이지만 털털한 성격이고 둘째는 좀 더 섬세하다. 그래서인지 이런 손 편지를 좋아하는 거 같다. 그런데 너의 이런 편지 공세(?)에 가끔은 아 이 예쁜 쪽지들을 어떻게 처리하나 하며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작은 종잇조각들을 다 모아놓고 싶다가도 모아놓았다가 쓰레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들고 마음이 갈팡질팡 한다. 일단 딸이 써 온 편지들이 가방에 있으면 여력이 될 때는 모아서 모두 사진을 찍어둔다. 어떻게 라도 기록을 남겨보고 싶은 마음에. 그러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긴 한다.
오늘 아침도 딸의 그림편지를 열어보며 기쁨으로 시작했다. 등원시키려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내 손에 꼭 쥐어준 핑크 편지 한 장. 겉면에는 '엄마'라고 또박또박 쓰여 있고 편지를 펼쳐보니 예쁜 인어공주가 바위에 앉아있는 그림이었다. 둘째는 인어공주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나를 인어공주로 자주 그려준다. 이 편지도 사진을 찰칵 찍어 내 휴대폰 갤러리에 보관해 두었다. 아이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으니 참 행복하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내리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옛말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다. 부모에게서 자녀로 내려가는 사랑은 있지만, 자녀에게서 부모로 올라가는 사랑은 크지않다는 뜻이다. 효녀나 효자인 자녀들도 많이 있겠지만 부모님이 자녀에게 주는 사랑의 크기를 모두 알 수 있는 자녀는 없을 거 같다. 나 조차도 내 아이를 키워보며 부모님이 나에게 주셨던 사랑을 어렴풋이 느끼는 정도니까 말이다.
아직도 엄마가 젊은 시절 어쩜 그렇게 열정적으로 나를 키울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나는 지금도 사소한 일에 흔들리고 아이에게 내 기분을 전가하고 힘들어하며 지내는데 엄마는 그 당시에 무척 활동적이며 에너지가 넘치셨다. 기운 없어하시는 모습을 본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내 자녀도 나의 모습을 나중에 내 나이가 되어 떠올릴 테지. 우리 엄마는 그땐 그랬었어하며.
그랬을 때 내 모습이 자녀에게 적어도 행복하게는 비춰지면 참 좋겠다. 지금 당장 힘들어서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더라도 아이가 오면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줘야 할까. 아니면 내가 지금 힘듦을 아이에게 표출해야 할까.
진실과 솔직함은 좋지만 그건 상대방이 같은 어른이거나, 대등하게 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좋은 게 아닐까.
아이들은 어른의 등을 보며 자란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어른이 감내해야 할 게 분명 있다는 뜻일 거다. 그러니 힘이 좀 들더라도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웃어주고, 말이 힘없이 나올 것 같을 때는 일부러라도 밝고 힘차게 아이를 향해 이야기해 주려 노력한다면 좋겠다. 그러면 아이가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아 우리 엄마는 참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셨어'라고 긍정적으로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부모가 되는 일은 이전까지의 내가 아닌,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일이다.
내가 했던 행동을 똑같이 하는 아이를 보며 '아 이 행동은 앞으로 하지 말아야지' 하며 조심하게 되고, 내가 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조건 없이 주는 아이를 보며 '조그마한 아이도 사랑을 아는데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좀 더 배려하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한다. 첫째에게는 숙제하라고 말하는 엄마보다 잠시라도 몸놀이를 하며 까르르 웃게 해 주는 엄마, 언니만 예뻐한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둘째에게는 '이래서 그렇지' 하며 이성적으로 말하기보다는 한번 더 안아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아이를 키우며 나를 다듬고 깎아내며 뾰족했던 내가 둥그렇게 변해간다. 예민하고 나밖에 모르던 사람이 점점 무던해져 간다. 옛날에는 '아줌마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지금 내가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아줌마들이 먹을 걸 싸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그렇게 먹이려 하셨던 것이나,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면 남는 음식이 있으면 싸 가려하셨던 것 등의 일들 말이다. 어릴 적에는 어딜 가든 바리바리 음식을 싸고, 놀러 가서 최대한 사 먹지 않으려 하는 엄마의 마음이 부끄러웠다. 철없는 마음에 '우리 집은 돈이 그렇게 없나?', '가서 사 먹으면 되지 뭘 이렇게 바리바라 싸가실까'라고 생각했다.
지난 주말, 서울랜드를 가기 위해 집에 있는 간식과 음식에 과일과 과도까지 챙기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엄마가 이래서 그때 바리바리 음식을 싸신 거구나' 하며 옛날을 떠올렸다. 놀러 가서 간식 몇 가지는 사 먹을 수 있지만 계속 사 먹을 수도 없고 집에서 싸가서 먹을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좋은 거라는 걸 나도 깨달은 거다.
사람은 그 사람의 그 시절이 되어봐야만 그 사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고는 가슴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를 키우며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아직도 진짜 어른이 완성되려면 멀었다. 완성형의 어른이 있기나 한 걸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1살이면 부모 나이도 1살, 아이가 5살이면 부모 나이도 5살이다. 그러니 아이를 키우며 아이와 함께 엄마도 한 걸음 한 걸음 깨달으며 나아가면 된다. 얘들아 너희도 세상이 처음이겠지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 그러니 우리 같이 사랑하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