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의 중요성
스벅에 일단 오면, 그냥 쓰게 된다.
노트북을 켜고 와이파이를 연결한 후 자동으로 즐겨찾기 해 둔 브런치스토리를 누르고 로그인을 한 후 글쓰기 버튼을 누르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글로 쓰고 보니 뭔가 많은 행동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행동을 하기까지 귀찮거나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싫은 마음이 들다면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오늘 아침에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루틴이었다. 첫째와 둘째를 동시에 등원과 등교를 하는 루틴이었는데 오늘은 둘째가 늦잠을 자고 잘 못 일어나는 바람에 그냥 두었다. 그리고 첫째를 학교에 일찍 등교시킨 후에 집에 와서 보니 둘째가 아직도 자고 있었다. 순간 '아이가 너무 피곤했나 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어린이집은 등원 시간이 딱 정해져 있지 않고 수업시작 시간까지는 좀 여유가 있으므로 깨우지 않았다.
첫째를 등교하고 돌아온 나는 땀으로 범벅이었다. 일단 선풍기를 틀고 TV를 켰다. 바보상자 속 화면에 얼굴을 고정하고 잠시 멍을 때렸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30분이 훅 지나가 있었다.
'얼른 둘째를 깨워서 어린이집에 보내야지'
둘째를 깨워 세수를 시키고 옷을 입힌 후 아침을 빠르게 먹였다. 그리고 등원을 시키고 나니 어느덧 시간은 9시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원래 내 루틴대로라면 9시도 되기 전에 스타벅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을거다. 오늘은 뭔가 많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발걸음도 축 쳐지고 지금 스타벅스에 내가 가서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걸까? 까지 생각이 미쳤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고, 관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그동안 쌓은 100일 가까이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느낀다. 아침에 첫째와 둘째를 동시에 등원 및 등교시킨 후 스타벅스로 오는 발걸음은 무척 가볍고 당연하다는 듯 내 몸도 그에 따라 반응했다. 마치 스타벅스가 나의 출근지인듯 하지만 활기한 마음으로 왔었다. 그 작은 루틴 하나만 깨졌을 뿐인데 몸과 마음이 느끼는 것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생각해 보면 회사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뜰 때는 그렇게 눈 뜨기 싫고 피곤하다가도, 회사 모드로 ON 되는 순간 나는 다른 정신세계를 장착하게 된다. 그 때 부터는 눈이 아무리 졸리고 몸이 피곤하더라도 나도 모르게 회사원 모드가 되어 활기가 넘치게 된다. 그 활기는 저녁 때까지 이어진다. 물론 집에 돌아오면 다시 피곤해 지긴 하지만 말이다.
이건,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몸과 내 기분에 의존해서만 살아가면 안됨을 의미한다. 젊은 시절에는 내 몸이 조금만 아프거나 기분이 많이 안좋거나 하면 그 상태를 내가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될 이유로 합리화 시켰다.
내 몸이 제일 소중하니까, 내 기분과 감정은 존중 받아야 하니까. 라는 이유를 들어 '오늘은 몸이 안좋아서 휴가를 써야할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이런 나를 계속 다니게 해 준 우리 회사는 정말 좋은 회사가 분명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책임했고 나 자신에 대한 연민에 가득차서 인생을 살아갈 기본 자세조차 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마저 내가 지나온 길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버티고 버텨 온 삶이라면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 했던 행동을 충분히 반성하고 뼈저리게 잘못을 깨달아 다시 새로운 기회가 있을 때 만회하면 되지 않을까?
누군가는 오늘도 몸이 안좋고, 마음에도 힘이 들어 아무것도 하기 싫거나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 많이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날은 누군가에게나 오기도 하고, 계속 오기도 하고, 잠깐 왔다가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그런 날이라면, 나가서 몸을 움직이자. 내 기분에 좌지우지 되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개척해 나가고 기분마저 바꿀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자.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수없이 들어온 말이고 머리로도 이해하는 말이지만 저 말은 진리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인 악동 뮤지션의 수현이 번아웃이 왔을 때 오빠인 찬혁이 해 준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도 일단 나가자!
일단 나가서 산책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