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머리가 좋아졌네?

by 보나

나는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다. 순간 기억력이나 회사에서 일할 때 필요한 것들 기억하는 능력은 좋은 편이지만, 그 외의 별로 중요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잘 까먹는다.


아이들에 관해서도 그렇다. 아이들이 하는 말들을 귀담아들으려 노력은 하지만 두 딸들이 쉴 새 없이 하는 말들 중에 내 귀에 꽂히는 것들은 진짜로 중요한 말들 뿐이다. 학교 준비물이나, 체험학습 일정,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 등이 그에 해당한다.


얼마 전, 6세인 둘째 딸이 어제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 어린이집에 가져가는 수저를 토끼모양 숟가락과 포크로 바꿔줘."

"엄마, 나 간식으로 뻥튀기가 먹고 싶어."


특히, 둘째 딸은 항상 입이 살아있다. 집에 와서도, 밖에 나가서도 종알종알 귀여운 입으로 나에게 말을 한다.


그래서 언니는 말이 많은 둘째가 시끄럽기도 하고 엄마가 본인과 말을 하고 있을 때 종종 끼어드는 동생이 밉기도 하다. 나 역시도 둘째가 참 귀엽지만 쉴 새 없이 나에게 말을 할 때면, "제발 그만 좀 말하면 안 될까?", "고 입을 좀 쉬어도 될 것 같은데..."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둘째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알종알 본인의 이야기를 한다.


둘째가 저렇게 나에게 순간순간 요청하는 것들이 꽤 있는데 그것들을 자주 까먹었었다. 그래서 둘째는 나에게 말한다.


"엄마, 왜 내가 준비하라고 했던 수저로 준비 안 해줬어?"


"엄마, 오늘 어린이집에 일찍 데리러 오라고 했는데 왜 안 왔어?"


자주 까먹는 나에게 둘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서 입이 툭 튀어나온 채로 섭섭한 표정을 짓는다. 울먹울먹 거리는 둘째를 다독이면서 "미안해 엄마가 다음에는 꼭 해줄게~" 하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 갑자기 둘째가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숟가락과 포크도 토끼 모양으로 챙겨주었고, 시장을 지나가다가 뻥튀기도 구입했다. 저녁때 둘째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나에게 오더니 말한다.


엄마, 머리가 좋아졌네?


무슨 말인고 하니, 본인이 했던 요청을 기억해서 잘 들어줬다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 말을 듣는데 ‘하하하’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엄마에게 머리가 좋아졌다는 표현을 쓰다니, 둘째의 표현은 참 창의적이다.


그래, 엄마 머리가 좋아졌나 봐.
이제 더 잘 기억할게!


둘째의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던 저녁이었다. 자그마한 것을 잘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너의 섬세함에 놀란다. 이런 아이일수록 더 많이 신경 쓰고 기억을 해서 원하는 걸 잘 들어줘야 할 텐데, 첫째에게 더 많이 신경을 쓰느라 둘째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가끔 후회가 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완벽할 수는 없을 거다. 두 자매를 둘 다 완벽하게 아주 잘 키워야지 하는 건 욕심이고, 자만이다. '자식은 잘 키우려고 낳은 게 아니라, 사랑하려고 낳은 거다'라고 말하는 본질육아의 지나영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아이 숙제, 식사 준비, 설거지 등 내 앞에 떨어진 일들에 집중하느라 아이들에게 소홀하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이 나에게 보내는 작은 신호들 만이라도 놓치지 않고, 아이들의 말을 보다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자세만이라도 갖춘 엄마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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