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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태어나고 싶다는 남편

by 보나



10월 추석 명절을 지내고 집에 돌아와 남편과 대화를 했습니다.


"형님은 운도 좋은 거 같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일도 잘 풀리는 거 같아 부러워."


그러자 남편이 갑자기 한 마디 합니다.


"나는 니로 태어나고 싶다."


ㅋㅋㅋㅋㅋ


남편의 그 말을 듣자마자 웃음이 빵 하고 터졌습니다.




경상도 남자인 남편은 가끔 이렇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개그를 칩니다. 투박한 경상도 말투로 말하면 그 말에도 감정이 실려 사투리의 느낌과 함께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그가 지금 장난을 포함한 감정으로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실제로 화가 나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저는 느낄 수 있습니다.


남편은 요즘 휴직 중인 저의 삶이 부럽나 봅니다. 오늘 아침에도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오늘 모임 있다며? 아주 자유롭게 모임을 잡네?"

"내가 보기엔 네가 젤 자유로운 거 같은데? 내 카드로 자유롭게 막 쓰던데?"


하며 집에 있으며 본인의 카드를 쓰는 저에게 한 마디를 합니다.


사실, 입장을 바꿔서 저라도 남편이 휴직하고 집에 있고 저 혼자 돈을 벌고 있다면 같은 말을 했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집에 있으면서 하는 육아와 가사노동에 대해서는 1도 생각하지 않고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루에 전업 주부가 하는 가사노동이 3~5시간이라고 가정하고, 시간당 15,000원~20,000원의 시급을 받는다고 하면 연간 2,800~3,800만 원 정도의 연봉이 산정된다고 합니다.(평균 가사노동 시간 및 시급 측정 : CHAT GPT 통계자료 사용)


전업주부는 매일 꾸준하게 다양한 종류의 일들을 해내야만 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 끼를 차리고 집을 깨끗한 상태로 정돈하고, 빨래를 일정한 시간에 돌리고 건조기를 돌려서 꺼내서 갭니다. 환기타임에는 환기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정리합니다. 계절마다 계절옷도 정리하고 필요한 옷을 꺼내 정리하는 것도 엄마의 몫. 오후에는 아이들의 등하원을 도맡아 하면서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중간에 간식 싸가서 먹이고, 놀이터도 데려다주고.. 생각보다 아이들을 위해 해주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왕 휴직했으니 나를 위한 시간도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오전에 카페에 가서 글 쓰고 책 읽기, 오후에는 운동하기 등.


이렇게 나까지 챙기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래도 좋은 점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거지요. 모든 건 자유의지가 달려있는 거 같아요.

내 의지로 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이렇게 큰 차이를 가져다줍니다.


남편은 이런 제 삶이 부러운지 요즘에는 이런 말도 합니다.


"니 지금 당장 복직해라. 내가 휴직하게."


그렇지만 그는 휴직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아마 깊은 마음 한 구석에서는 휴직을 하고 싶을 거예요. 회사를 잠시라도 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그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팀의 분위기도 있고 본인의 열정도 큰 사람이어서, 그에게 휴직이 쉬운 결정이 아닐 겁니다.


만약, 그가 휴직의 경험을 해 본다고 한다면 저는 그에게 충분히 기회를 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가만 보면 그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 같거든요. 너도 여유를 가지고 너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좀 찾아봐라 하고 싶습니다. 여유와 삶의 틈이라는 걸 좀 즐겨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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