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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이유

feat. 휴직 중인 엄마임에도

by 보나


얼마 전 등굣길에 아는 엄마를 만났다. 그 엄마가 물었다.


"아니 근데 아침마다 어디 가세요? 항상 가방을 메고 계시네요."

"아, 그냥 카페 가서 놀려고요."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6개월째 아무 생각 없이 해오던 행동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휴직을 하고 매일 아침, 회사를 가듯 집을 나섰다. 스타벅스로, 가끔 맥도널드로, 가끔 근처 한가해 보이는 카페로. 그렇게 6개월째.


나는 왜 매일 아침 집을 나설까?

휴직했는데도 왜 자꾸 나가야만 할까?

그냥 집으로 돌아와 쉬면 안 되는 걸까?




아무래도 내 안에 이름 모를 불안감이 아직도 자리하고 있나 보다.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질 것 같은 마음, 그에 대한 죄책감.


계속 일하고, 아이 키우며 정신없이 살다가 휴직을 했는데 쉬면 좀 어떤가.

며칠 그렇게 늘어져 있다 보면 다시 나가고 싶기도 하고 그렇겠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멍하니 있는 건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겐 가만히 있는 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난 이후의 휴식일 수도 있을 텐데.


회사를 다닐 때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고 싶을 때가 많았다. 가만히 있으면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몸을 움직이며 끊임없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지금도 이렇게 매일 나서 이유가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찾아올까 봐 두려워서 인가 싶다.


그러다가 간혹 아이들 등교 후 카페에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또 다른 새로움을 느낀다.

아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 먹다가 그대로 두고 간 그릇과 식기, 집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면 마음도 같이 정돈되는 느낌이 든달까. 몸이 힘든 날에는 이마저도 하기 힘들어 소파에 덜렁 누워 휴대폰을 보기도 한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TV 시청도 열심히 한다. 그때 어쩌다 본 드라마가 인생 드라마가 되기도 하고, 어쩌다 본 유퀴즈 예능을 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매일이 다르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카페로 향하고 가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삶. 그 속에서도 매번 가는 카페가 달라지기도 하고, 가서 주문하는 메뉴가 달라지기도 한다. 매일 앉던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에 앉아보기도 하고, 가끔은 책을 먼저 읽고 글을 쓰기도 한다.


내가 정한 '원 씽'이라는 루틴. 그 바운더리에 갇혀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나도 언젠가 그대로 멈춰버리지 않을까.


반복하는 루틴과 그 루틴에 변화를 주는 것. 반복과 변화는 한 끗 차이다.

반복을 해야 변화가 생기고, 변화가 생겼다면 반복을 다시 변화시켜야 한다.


내가 매일 집을 나서는 이유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 삶의 변화를 주기 위함이다.

그 속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는 방법을 알기 위함이다.

나만의 시간을 통해 나를 알아가기 위함이다.


결국, 나에게는 매일 집을 나서는 행동이 휴식이다. 마음이 휴식하게 되니, 몸도 나아진다.


"우리는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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