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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리를 하러 가는 3가지 이유

by 보나

나와 남편이 고정적으로 가는 미용실이 있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적어도 1년에 3~4번 정도 방문을 했던 거 같고 남편은 3개월마다 머리를 자르러 갔다. 부부가 같은 미용사 분께 머리를 한 지가 벌써 5년 정도 되었다.




휴직을 한 후에는 한동안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5월 말쯤 휴직을 했고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인해 어깨를 넘어선 머리길이로는 땀이 줄줄 흘러 버티기 어려웠다. 머리를 질끈 묶었다. 질끈 묶은 상태로 6월, 7월, 8월까지 유난히도 무덥던 여름을 보냈다. 그동안 머리는 점점 더 길었고 이제는 미용실에 가야 할 시기가 왔다.


추석이 다가오기 전 머리를 자르고 싶은 충동이 들어 집 근처 새로운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 원래 가던 미용실은 조금 멀리 매장을 이동을 해서 가기가 번거롭게 느껴졌고, 새로운 분께 머리를 맡겨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곳은 여자 미용사 분이었는데 같은 여자여서 인지 내가 원하는 니즈를 보다 섬세하게 반영해서 머리를 잘라주셨다. 산뜻하게 머리를 자르고 나왔는데 머리가 길 때는 잘 보이지 않던 흰머리가 갑자기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염색을 해야겠구나.


남편이 얼마 전 원래 가던 미용사 분께 가서 머리를 자르러 갔더니 와이프 분은 왜 안 오시는지 물어봤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명절이 끝나고 나서 원래 가던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 정말 오랜만이다. 매장을 이전하고 처음 가봤는데 기존에는 매장이 더 컸지만 아담해졌고 있을 것만 있게 바뀐 느낌이었다. 4층의 높이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머리 하던 여유는 사라졌지만 군더더기를 빼고 1층에 위치한 미용실에 오히려 정이 갔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하하하. 휴직하고 나니까 머리 할 일이 없더라고요."


이 미용사 분은 남자분인데도 여성고객들과 대화를 잘한다. 어떤 손님은 머리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미용사분과 대화를 하러 미용실에 오기도 할 만큼 대화를 잘 이끌어 내는 분이다. 나와도 대화가 잘 통해서 머리를 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항상 기분이 좋다. 이 미용사분도 나처럼 책을 좋아해서 매장에 자신의 취향인 책들을 여기저기에 쌓아두곤 했는데 책 취향이 나랑 비슷해서 미용실에 다녀오면 유익한 책들을 1권씩 꼭 읽고 오곤 했다.


내가 먼저 다니던 미용실이었고 남자 미용사 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편에게도 소개하게 됐다.

알고 보니 축구광인 남편처럼 이 미용사 분도 축구를 좋아했다. 거기에 나이도 비슷한 또래이다 보니 남편은 어느새 머리를 하러 가서 이 미용사 분과 친구처럼 축구 중계 이야기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이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가는 이유는 3가지다.


첫 번째, 진짜 필요해서 간다.

머리가 많이 길어서 자를 때가 되어서 이거나 흰머리가 많아져서 염색이 필요하거나. 진짜로 머리를 손질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간다.


두 번째는, 기분전환을 위해 간다.

남편과 싸웠거나 회사에서 진급 누락을 했거나 괜히 기분이 울적하거나 등등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미용실에 방문하기도 한다. 생머리에서 펌을 하거나, 긴 머리에서 짧은 머리로 자른다거나 염색을 한다거나 하고 손질된 머리로 나서서 달라진 내 모습을 보면 기분이 참 좋다. 머리를 하고 나면 분명 기분전환이 된다.


세 번째는, 대화를 하기 위해 간다.

머리를 하는 동안 손님은 할 게 없다. 미용사 분께 내 머리를 온전히 맡기고 앞을 쳐다보고 있는 것 외에는. 그런 무료한 시간을 견디기 어려운 경우에는 미용사 분과 대화를 나눈다. 나는 내가 어떤 대화 주제를 꺼내더라도 편하게 받아주고 거기에 새로운 정보까지 얹어 주기도 하는 이 미용사 분과 대화할 때 참 즐겁다. 미혼임에도 아이들 이야기에도 잘 반응해 주고, 육아휴직 중인 엄마의 마음까지도 알아주신다. 거기에 IT 소식에도 관심이 많아서 머리를 하고 나면 새로운 정보를 하나씩 얻어온다.


내가 미용실에 가는 이유 중에는 3번이 가장 크다. 이 미용사 분과 유의미한 대화를 하면서 머리도 예쁘게 하고 집에 돌아오면 내 기분도, 머리 스타일도 refresh가 된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특별한 관계의 맛이 있다. 1년에 몇 번 보지 않지만 갈 때마다 생산적인 대화를 하며 기분 전환이 되는 관계.


조금은 특별한 관계이다.


단골 고객이지만 가끔은 다른 곳에 가기도 한다. 그렇지만 진짜 Refresh가 필요할 때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곳이 이 미용실이다.


영업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라는데 이 분은 대화를 통해 우리 부부의 마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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