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의 추억
처음부터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 패드를 못 보게 하는 벌칙이 어딨어. 그런 걸 왜 정했어.”
할머니댁에 가서 사촌언니들을 만나 신나게 게임을 할 생각에 들떠있던 첫째는 벌칙 이야기를 듣자마자 징징거리며 말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절대 벌칙을 없애 줄 생각이 없었다. 잘못을 했으면 그에 마땅한 벌을 처벌을 받아야 다음부터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할머니댁에 내려가 만난 사촌언니들도 동생들이 패드를 못 본다는 말을 듣고, 함께 동참하기로 해 주었다. 언니들만 패드를 보면 동생들이 보고 싶을 거니까. 착한 언니들에게 참 고마웠다.
처음에는 “엄마 심심해, 심심해. 뭐 하고 놀아?” 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러더니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맏언니가 앉아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세명의 동생들도 함께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여자 아이 3명과 유치원생 1명이 모여 각자의 스타일대로 그림을 그리고, 그린 그림을 오려서 가지고 놀기도 했다. 아니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한참 그림을 그리더니 방에 들어가서 자기들만의 역할놀이를 시작한다. 방문 앞에는 병원이라고 붙여놓더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한다.
방문이 열렸을 때 살짝 뭐 하고 노나 봤더니 간호사, 환자, 의사 각각의 역할을 정하고 진료에 필요한 도구들도 직접 종이로 만들어서 놀고 있었다. 초6, 초3, 초2, 6세가 이렇게 사이좋게 놀 수 있다니! 새삼스러웠다.
‘그래 이런 게 추억이지.’
나도 어린 시절에 명절 때마다 할머니댁에 모여 사촌오빠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술래잡기도 하고 말장난을 하기도 하며 놀았는데 그게 어찌나 즐거웠던지! 서로 사춘기가 되고 난 이후에는 그렇게 놀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만 유효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아이들은 몸으로 놀다가도 간간히 패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건을 추가했다. 패드가 보고 싶다는 말을 꺼낼 때마다 패드를 못 보는 기간이 하루 연장 되는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포기하고 더 이상 패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계속 자기들만의 몸놀이도 하며 놀고 저녁에는 집 옆에 있는 운동장에 가서 러닝도 하고 돌아왔다. 3일째가 되자 아이들은 거의 패드를 잊은 듯했다. 본인들도 패드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신기해했다.
언니들끼리 게임만 하고 자신과는 놀아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출하던 6세 막내는 디지털 디톡스 덕분에 언니들과 함께 놀 수 있었다. 언니들 틈에 끼어서 말도 잘하고 나름의 역할을 하며 노는 걸 보니 막내도 참 많이 컸다 싶었고 대견했다.
첫째는 동생과 계속 함께 놀다 보니, 화를 먼저 내기보다는 소리 지르지 않고 차분히 말하는 방법을 많이 연습하게 되었나 보다. 동생과 사소한 일로도 자주 싸우던 첫째는 동생에게 화를 내지 않고 말하는 방법도 배우게 됐다.
너희들에게도 이번 명절연휴가 내 기억처럼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기를 바래본다. 너희들이 싸운 덕분에, 추억 한 페이지를 얻었기를. 자매는 싸웠다 화해했다 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라는 걸 깨달으며 성장하기를.
이번 명절연휴 3일간의 디지털 디톡스는 성공적이었다. 아마 뇌가 깨끗해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