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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기보다 '그냥' 하기

아침 등교 전쟁

by 보나


어제는 아침부터 기운이 없었다. 전날밤 드라마를 보다가 늦게 자기도 했고 눈은 감았지만 램수면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쿵쾅쿵쾅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나 이러다 공황장애가 오는 건 아닌가' 불안해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일어났을 때 잠을 안 잔 것처럼 피곤했을 뿐.


그 상태로 일어나니 몸에 힘이 없었다. 힘없는 채로 아이를 깨웠다.


이번 주 내내, 아니 사실은 몇 주전부터 아이와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걸로, 등교준비 하는 일로 실랑이를 벌여왔다. 그러다가, 그저께는 크게 화를 내고 차로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놓고 쌩 돌아와 버렸다.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첫째 아이는 느림보다. 뭐든 여유롭고 느릿느릿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오라고 하면 세월아 네월아 하고 세수하고 와서 옷을 입으라 하면 입던 바지를 엉덩이에 걸친 채로 앉아서 딴생각을 한다. 오늘은 일부러 아이가 보이지 않는 부엌 식탁 안쪽에 앉았다. 아이가 옷을 느릿느릿 입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보면 자꾸 화를 낼 것 같아서.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시계를 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인 10분이야. 그 안에 옷 다 입고, 못 입으면 밥은 못 먹고 학교 가야 해."

"으아아아앙~~ 왜 그런 말을 해~~"


잠시 짜증을 내며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침에 목이 아파 끓여놓은 허브티를 마시며 모른 척했다.

그리고는 휴대폰의 뉴스를 보며 다른 곳에 집중했다. 몸에 힘이 없어서 아이에게 뭐라 말할 기운도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지금 일어날 시간이 아닌 둘째가 일어났다.


"엄마~~ 나 오늘 생일잔치 있어서 9시까지 가야 된단 말이야!! 왜 안 깨웠어!"


첫째는 학교로 출발해야 할 시간 5분 전이고, 둘째는 지금 일어나서 가야 한다고 난리다.

첫째 먼저 데려다주고 와서 둘째를 데려다 주려했던 내 계획은 틀어졌다.


그때 첫째가 갑자기 밥을 후루룩 먹더니 나에게 다 먹은 접시를 보여준다. 아니, 너 이렇게 빨리 먹을 수 있는 애였어? 이렇게 빨리 할 수 있는 애였냐고! 순간 배신감이 들었지만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잘했어. 싱크대 위에 가져다 놓고 옷 입고 준비해~"


그 사이 우는 둘째를 달래 옷을 입혔다. 아무래도 옷 입히고 뭘 먹여 데려가기엔 5분 안에 역부족이었다.

나도 모르게 첫째에게 말했다.


"첫째야, 오늘은 너 혼자 학교 가야겠다. 혼자 갈 수 있지?"

"응!" 하며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 불안했지만 둘째의 떼 앞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렇게 첫째는 학교에 혼자 갔고, 둘째는 나와 함께 행복하게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내려놓아야 할 정도로 몸이 힘들고 안 좋으면 오히려 일이 잘 풀리기도 한다.

전혀 기대를 안 했기에. 아니면 내 몸이 아무것도 안 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열정적으로 싸우려 하지 않았기에, 아이와 싸울 힘이 없었기에 오히려 아이가 스스로 잘한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은 아침마다 전쟁통이다.

휴직하고 나면 아이들에게 잘할 줄 알았던 나는 오히려 나보다 이모님이 계시는 게 낫겠다는 마음이 계속 든다.




나는 가끔 누군가를 위로할 때조차 완벽하길 바란다. 누군가가 나에게 힘들다고 하면 내가 완벽한 위로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생각한다. 완벽주의를 내려놓지 못했다거나 하는 문제라기보다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욕망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우월함도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자만했다. 뭐든지 완벽할 수 있는 정신력, 체력도 안 되면서 그러길 바란다. 매일 불가능을 꿈꾼다.


육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잘'하려고 하지만 그럴 정신력과 체력이 안된다. 그러면서 완벽한 육아를 꿈꾼다.

아이도, 나도, 자매 관계도, 부부 관계도, 모두 행복하고 안정적이고 완벽한 삶을 꿈꾼다. 삶이, 가족이, 육아가 1+1=2라고 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처럼 완벽할 수 있을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자꾸 완벽을 바라는 건 불가능을 꿈꾸는 건데.. 그걸 알면서도 자꾸 나는 이상과 현실의 갭을 아직도 메우지 못했다.


나와 같은 모습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은데, 나부터 달라져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이것 또한 자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이는 아이가 생긴 모양대로 알아서 자랄 텐데 내가 뭐라고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단지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의 인생을 통째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닌지.




잘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자.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라' '나 자신을 믿어라' 같은 말에 잘 공감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그게 어떤 느낌이고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겠다. 감도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해온 결정들, 내가 쌓아온 시간, 내가 만들어온 흔적들은 내 안에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믿어라'라는 말보다는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믿기로 했다.
- 박소령 <실패를 통과하는 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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