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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 땐 놀고, 할 땐 하고.

feat. 남편의 출장

by 보나


지난 2주 동안 남편이 해외출장을 갔다. 그 말인즉슨 2주 동안 딸 둘 '혼자 육아'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출장 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몇 년 전 남편이 두 달 정도 장기출장을 갔을 때 '혼자 육아'를 하며 겪었던 일들이,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는 일을 하고 있었고 일을 하며 혼자 육아를 하니 두 배, 아니 세배도 더 힘들었었고 지금은 휴직 중이니 그때와는 사정이 다르긴 하다. 그래도 평일에는 늦게 와서 얼굴을 못 보더라도 주말에라도 남편의 존재는 큰 도움이 되었었는데.. 걱정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힘들면 어떡하지?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요즘 푹 빠져있는 드라마가 있었고, 그 드라마의 덕질까지는 아니지만 몇 번씩이나 돌려보며 몰입할 대상이 있어서였는지 그래도 덜 힘들 거란 생각이 들긴 했다. 사람에게는 몰입할 대상이 있으면 다른 일들은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느껴지는 기운 같은 게 있는 거 같다. 내가 그렇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일들은 조금은 사소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서 푹 빠져있는 '드라마'를 무기로 남편을 그렇게 출장을 보냈다.


그리고 시작된 '혼자 육아'. 독박이라는 단어는 왜인지 쓰고 싶지 않아 혼자 육아라고 썼지만 실은 혼자 육아는 아니었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놀고, 행복했던 '함께 육아', '함께 시간' 으므로.




아빠의 부재가 익숙하지 않은 듯, 평소에는 아빠를 전혀 찾지 않던 아이들이 아빠가 출장을 가자마자 아빠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엄마, 아빠 몇 밤 자고 와?"


평소 감정표현을 별로 하지 않는 첫째는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다 했고, 아빠 껌딱지인 둘째는 아빠가 몇 밤 자면 오는지 궁금해했다.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몇 밤을 이야기하기가 미안했다. 일단 해외 출장지에 도착한 아빠와 영상통화를 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다음 달은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하는 날이었다. 드라마를 보기 위해 아이들을 최대한 빨리 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 하던 숙제도, 아이들이 졸리면 숙제 다 하고 자라고 하던 잔소리도 거두었다. 1가지만 했으면 그날은 되었다. 그냥 최대한 빨리 재우는 게 최대 과제였다. 그렇게 아이들을 평소보다 1시간은 일찍 재우고 혼자서 드라마를 보며 행복했다. 이틀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어느덧 주말이 가까워졌다.

좋다. 이번 주는 이렇게 보냈으니 성공이다!


어김없이 다음 주가 돌아왔다.


이번 주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생각하다가, 평상시 하던 일상에 '힘을 빼기'로 했다. 남편은 나에게 안전기지 같은 존재이기도 한데, 안전기지가 당분간 없으니 내 마음에 최대한 무리를 주지 않아야만 했다. 그러려면 아이들과의 트러블을 줄여야 하고 최대 트러블은 숙제하라고 하는 말과 아침에 늦잠 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일이었다. 저녁에 일찍 재웠더니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는 일은 그래도 덜 힘들었다. 여전히 숙제하라고 시키고 말 안 듣고 자리에 와서 앉지 않는 아이들 앉히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래서 남편이 없는 기간만이라도 일단 그냥 두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가만히 두었다. 두 자매는 생각보다 꽁냥꽁냥 정말 잘 놀았다. 같이 그림을 그리며 게임을 하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하고, 인형놀이를 하기도 하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평화로웠다.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내가 잡고 있던 건 쓸데없는 집착이었을까. 이렇게나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데 그냥 이 순간만 남기면 안 되는 걸까.


아이들에게 습관이란 걸 꼭 잡아줘야 하나, 공부를 기본은 꼭 시켜야만 하나. 영어도, 수학도, 받아쓰기도, 단원평가 준비도 아무것도 안 하고 두면 안될까. 내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차서 이도저도 안될 수도 있는데 이것저것 다 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따라오지 않는 아이를 보며 고통에 가득 차 있었던 거다.


아이들이 노는 걸 보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참 행복했다. 내 기분이 행복하니 아이들에게 장난도 치며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게 얼마 만에 집안에 행복한 기운이 감도는 느낌인 걸까. 그동안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이 둘이 한 시간 정도 신나게 놀고 오더니 갑자기 나에게 와서 말을 한다.


"엄마, 오늘은 숙제 뭐부터 하면 돼?"


나는 당황했지만 그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응, 평소랑 같아. 구몬이랑 영어 책 읽기야."


첫째와 둘째는 모두 알겠다고 하더니 거실 테이블에 앉아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참 대견스러웠다. 놀 때 그냥 신나게 놀라고 두었더니 할 때는 또 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물론 아이들이 숙제를 한다고 나에게 찾아온 시간은 이미 잠들기 1시간 전이어서 많은 숙제를 해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스스로 한다고 말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교육서를 좋아해서 자주 보는데 요즘 보고 있는 영어 교육 관련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도현이의 부모님은 체력이 허약했던 '덕분에' 도현이에게 아주 필수로 필요한 공부만 선택해줘야 했다. 영어 유치원과 특수 커리큘럼에 특화된 유명한 학원에 간다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대신 '집중할 것'과 '하지 않아도 될 것'을 잘 나눴다. 약점을 강점화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 '김수민' 작가의 <영어 1등급, 초등 4학년에 결정된다> 중에서


또, 얼마 전 읽은 '임경선' 작가님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인생의 선택은 직진, 절충, 그리고 내려놓음이라는 크게 세 가지 형식으로 결단이 내려지는 것 같다.
-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중 p151


둘 다 '선택과 집중'과 관련된 이야기로 생각된다. 사람은 책을 읽다가도 자신이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만나면 거기에 꽂히는 걸까. 내가 제일 못하는 게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임경선 작가님의 말대로라면 내 인생의 선택은 주로 '절충'하는 방향을 따라왔다. 한 가지만 '확실하게' 선택한다는 일이 나에겐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방식이나, 아니면 그 어떤 실패도 없는 절충안을 항상 선택하려 애썼다. 물론 모든 선택을 그렇게 할 수는 없었고, 간혹 가다 나도 모르게 선택한 적도 있고 내려놓은 적도 있을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절충하는 방식만 선택하다 보니 내 인생에 그렇게 큰 성공도, 그렇게 큰 실패도 없는 이유가.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게 나의 아이들을 덜 힘들게 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란 걸 알면서도 욕심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것도 시키고 저것도 시키고 하다가 결국 아이들의 힘을 빼고 있는 건 아닐까.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내가 하루아침에 '선택과 집중' 하는 인간으로 거듭나기는 어려울 거다. 그렇지만 아이들만큼은 그게 뭔지 알려주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더 큰 용기를 내고 더 많은 걸 감당할 만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나는 준비가 되었는가? 과연 나는 할 수 있는가?


오늘도 결론은 없지만 고민만 남긴 채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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