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군은 첫 강의 4시간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마지못해 질문에 답하기도 하고 중요한 내용은 필기하기도 했다. 궁금했다. 왜 이 친구의 얼굴에서는 자신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어떤 내용이라도 괜찮으니 질문하라고 했다.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 K군에게 물었다.
“우리 친구는 취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니?”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었다.
“걱정되는 게 있나 보구나?
다른 수강생들의 시선이 K 군에게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 네.”
“뭔데?”
“삼성에서 저를 뽑아줄지 모르겠어요.”
“왜 그런 생각을 하니?”
“... 제가 지방대 출신이라서요...”
K 군은 지방 국립대에서 신소재공학을 전공하고 이미 졸업을 한 상태였다. K 군의 프로파일을 살펴보았다. 특이 사항은 없었다. 출신 학교가 지방이라는 것은 삼성그룹에서는 크게 고려할 만한 사항도 아니었다. K 군의 고민은 여타 취업준비생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었다. 낮은 자존감이 문제였다. 다만 그 원인을 출신 학교로 여기고 있었다. K 군뿐만 아니라 지방대 출신인 다른 취업준비생들이라면 대부분 스스로 그 사실을 자신의 약점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서류 전형에서 몇 번 떨어지는 경험을 하면 진짜 그렇다고 믿어버린다.
K 군의 출신 학교를 물어봤다. A 대학이었다. 마침 그 대학 출신 삼성 후배가 떠올랐다. 삼성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고 지금은 글로벌 기업인 B 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C다.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재원이다. 워낙에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나 B 사에서 영입했다. B의 사례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TV 사업의 1등 공신인 D 전무의 사례도 설명해 주었다. 뛰어난 디자인 실력으로 삼성의 TV 사업이 전 세계 1위로 등극하는데 큰 공헌을 한 분이다. D 전무는 지방대 출신이지만 두 단계 특진을 하여 30대 후반에 임원이 되었다.
삼성은 1958년 공채 제도를 시행한 이후로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고 있다. 국내외 대학에서 공부한 재원을 전국구로 선발해 양성하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고 설명을 했다. 이런 문화는 단지 삼성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고 소위 상위권 대기업도 비슷하다. 공기업, 공공기관은 이미 블라인드 방식을 채용하여 출신학교, 연령, 성별, 출신 지역 등을 배제한 채 서류전형을 실시한다. 면접 전형도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알려주었더니 K 군뿐만 아니라 그날 함께 강의를 수강한 다른 수강생도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현재 사기업의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기회의 균등 부여 차원에서 출신학교, 학점, 나이 등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는 추세이다. 무한경쟁 시대에는 과거에 잘한 것보다는 앞으로 잘할 수 있는 잠재역량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혁신기업으로 분류되는 IT기업들은 학력, 전공, 나이에 관계없이 코딩 테스트와 면접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한다. 기업에서 채용하는 방식에 대해 이해를 한다면 취업준비생이 실제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래는 대표적인 5대 그룹의 채용 프로세스를 도표로 정리한 내용이다.
5대 그룹 채용 프로세스
1단계 서류 전형은 지원서와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후보자를 선발한다. 지원서의 내용으로 직무 연관성을 검토하고, 자기소개서를 통해 지원자의 자격과 자질을 검토한다. 대졸자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 대학 편입이나 학점은행제 출신으로 고민하는 취업준비생도 있는데 이는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 단계에서 합격 여부는 자기소개서의 내용이 얼마나 채용 담당자를 설득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2단계 인적성 시험에서는 각 기업에서 개발한 방법으로 지원자의 직무 적합성 여부를 판단한다. 기업에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적 역량을 평가한다. 2단계까지 통과한 후보자는 서류와 평가 결과로만 볼 때에는 해당 기업의 직무를 담당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최소한 지식과 경험의 두 측면에서 그렇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기까지 통과한 지원자들의 마음은 아직도 면접이라는 큰 벽을 마주하고 있기에 마음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3단계는 실제로 지원자가 자신을 채용할 면접 위원들과 마주하며 통과해야 하는 최종 관문이다. 직무 면접에서는 전공 관련 질문 등을 통해 지원자의 직무 적합성을 파악한다. 직무 관련 면접이기는 하지만 답변하는 과정에서 지원자의 인성을 보여주는 태도와 비언어적인 행동도 관찰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인성 면접이다. 인성 면접은 주로 임원과 20년 이상 경력이 있는 간부사원이 담당한다. 지식과 경험이 뛰어난 지원자라 할지라도 특성, 동기, 인성, 품성 등 습관 영역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으면 합격점을 받기가 어렵다.
1~3단계를 다 살펴보아도 출신 학교로 지원자를 평가하는 항목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지금도 K 군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이 있다면, 아무 염려하지 말고 목표에만 집중하라고 하고 싶다. K 군과 비슷한 고민을 하던 J 군이 있다. J 군은 2020년 하반기 삼성전자에 합격했다. 지방 국립대 재학생으로 2021년 2월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축하 전화를 하면서 연수를 받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소위 ‘꿀팁’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J군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지방대 출신을 일종의 주홍글씨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서 예언이 아닌 예언을 해주었다.
"입사하게 되면 팀을 구성하여 연수를 받게 된다. 팀원으로 몇 주간 함께 지내다 보면 출신학교와 전공 등 정보를 서로 주고받게 된다. 물론 직무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구성원의 출신학교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물론 수도권에 대학이 쏠려있기 때문에 비율로 보면 30, 40% 정도가 되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지방대 출신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가 1년에 4, 5천 명 정도 채용한다고 했을 때 그 비율이 전혀 낮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지방대 출신이라 뽑지 않는 게 아니고, 도전하지 않기 때문에 뽑지 않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삼성 신입사원은 모두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한다. 지금부터는 자신의 실력, 즉 업무수행 역량, 대인관계 능력, 조직 적응력으로 평가받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기업의 특징은 과거의 성취보다는 앞에 벌어질 일에 관심이 많다. 모든 걸 리셋(reset)하고 시작하는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K 군은 그 시간 이후로 자신의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이후 네 번의 실패를 겪고 나서 결국 다섯 번째로 도전해서 삼성전자에 합격했다. K 군은 성공담을 나누면서 실패할 때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빨리 거기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유지하고 재도전하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었다고 K 군은 강조했다.
시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어 놓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사람은 갈 곳은 없다. 누가 못 가게 막는 것도 아니다. 나의 최대의 적은 어제의 나라는 말도 있다. 오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내일의 나는 어제의 나로부터 전혀 벗어날 수 없다. 다른 지원자가 나의 경쟁자가 아니란 뜻이다. 이 사실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