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마켓 미군부대 하리오송신소 진주만습격 태평양전쟁 일본 미국 조선 한국
예전 미군기지였던 캠프마켓에는 아직도 굴뚝이 남아있다.
우리 주변에는 과거의 아픔을 간직한 장소들이 있다. 인천 부평의 캠프마켓은 그런 곳 중 하나이다. 어느 날 이른 아침 해를 찍으려던 사진 속에 포착된 굴뚝이 일제강점기와 미군 주둔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캠프마켓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미군 폭격을 피해 한반도에 세운 조병창(兵器廠)으로, 태평양전쟁 무기를 생산하던 곳이다. 광복 후에는 미군이 접수하여 약 80년 가까이 사용하다가 2023년 12월에야 비로소 한국의 땅으로 완전히 반환되었다. 주권 국가가 된 지 거의 80여 년이 다 지나서...
굴뚝을 보자니 한 30년도 더 된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거래선에 미팅하러 가던 중 차 창밖으로 거대한 구조물을 봤다. 주재원 선배는 진주만 공습 당시 공격 지령을 내린 송신탑이라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사세보佐世保에 있는 하리오송신소針尾送信所였다. 하리오송신소는 1941년 진주만 공습 명령 'Tora! Tora! Tora!'를 중계했던 곳이다. 이 한 마디의 암호로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2,400여 명의 생명이 참혹한 죽임을 당했다.
캠프마켓의 굴뚝이나, 하리오송신소의 송신탑은 단순한 구조물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캠프마켓의 굴뚝은 우리 땅에서 스스로 자기 결정권을 갖지 못했던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을 까발린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견디고 버텨내어 해방되었으나, 일본이 떠난 그 자리는 미군이 그대로 채웠다. 우리에게는 힘도 부족했고 시스템이 부재하여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일본이 빠져나간 자리는 진공 상태가 되어버렸고, 자연스레 미국과 미군이 그 진공을 메꿔버렸다. 일본이 숟가락 하나 남기지 않을 정도로 착취하여 전쟁 물자를 조달하던 생산 기지가 미군이 한국에 진주하기 위한 거점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높이 136m의 거대한 하리오송신탑은 일본 제국주의의 무모했던 전쟁 야욕을 상징한다. 둘 다 제국주의의 잔혹함과 전쟁의 광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현재 캠프마켓은 일부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나, 본격적인 개발은 아직 진행 중이다. 시민단체와 인천시가 이 부지의 활용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역사적 의미를 보존하면서 미래지향적 공간으로 재건했으면 한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캠프마켓의 굴뚝은 침략과 점령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평화와 자주의 가치를 상징하는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 고통스러웠던 역사를 직시하고 배움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이 캠프마켓의 굴뚝이 진짜로 전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