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합니다’라는 말이 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는 뜻이다. 인문계 전공자들의 취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2020년 상반기 대학 졸업자 통계를 보면 전체 약 38만 명 중에 16만 명이 인문계로 이공계보다 약 3만 3천 명이 더 많다. 하지만 이공계 졸업자에 비해 양질의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다.
인문계 전공자가 취업이 힘든 이유는 외부환경과 내부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외부요인으로는 채용인원이 상대적으로 많은 제조업 기반 기업에서 인문계 전공자가 담당할 직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직군을 보면 마케팅, 영업, 경영 직군이 대부분이다. 이 직무는 기업을 운영하는데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 24시간 가동되는 생산이나 공정 관련 직군은 3교대 근무로 인력이 근무 교대조만큼 필요하다. 예를 들어 4조 3교대이면 동일한 일을 하는 부서에 4 배수의 인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공계 전공자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부적 요인으로는 인문계 전공자들은 이공계 전공자보다 기업에 대한 분석이나 연구가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반도체로 예를 들면, 이공계는 자신들이 지원한 기업의 기술과 제품에 대해 많은 내용을 사전에 연구하고 분석하여 취업 전략을 세운다. 반면에 인문계 전공자는 반도체 기업에 지원하면서도 정작 반도체에 대한 내용을 잘 모른다. 직접 연구개발과 생산 직무와 관련이 없어도 지원하는 기업과 관련된 기본 지식은 알아야 한다. 어떠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제품과 기술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반도체에 대한 기본 내용, 8대 공정, 기술 동향, 시장 현황 등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마케팅·영업 직무에 인문계 전공자라고 마치 기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반도체 기업에서 마케팅, 영업, 경영지원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자. 인문계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제품과 관련된 기술적 내용은 어느 정도 다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기업이 이공계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품에 대한 기본적인 과학과 기술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동일한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한 Loss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케팅·영업 직무는 외국어와 의사소통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안이한 태도로는 인문계 전공자의 설자리가 더욱 줄어들 뿐이다. 지원하는 기업이 속한 산업과 기술과 제품 등 시장 트렌드를 잘 알지 못하고 지원하는 건 서류를 제출했다는 의미만 있을 뿐이다.
인문계 출신들은 지금부터 이렇게 준비하자. 먼저 자신이 일하고 싶은 산업군이나 기업을 선정하자. 예를 들어 반도체 산업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정했다면 반도체 시장 트렌드, 반도체 기술 트렌드, 삼성전자 경영실적, SK하이닉스 경영 실적 등부터 살펴보자. 그런 후 인문계가 지원할 수 있는 직무를 알아보고 각 직무가 요구하는 역량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구체적인 취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구매 직무의 예를 들어보자. 구매 직무는 대개 원자재 구매, 부재료 구매, 장비·설비구매, 개발구매 등으로 나눈다. 원자재 구매는 반도체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핵심 재료, 소자 등을 담당한다. 부자재는 공정에 들어가는 케미컬과 GAS 등 제조에 중요한 부자재 구매를 담당한다. 여기서만 필요한 지식이 반도체 제조공정, 각 케미컬과 GAS의 역할 등 반드시 반도체 공정에 대해 알아야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 장비 구매는 기계공학적 지식과 역량이 필요하고 개발구매는 신소재와 관련된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수행할 수 있는 업무이다.
인문계 출신이 기술적인 내용을 공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들어가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당연히 ZERO BASE에서 출발하여 이공계 출신 못지않은 지식과 역량이 있어야 비로소 설자리가 있게 된다. 기업에서 요구하지도 않는 자격증과 인턴 경험 등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말고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보강하는데 투자하라. 문송하기 이전에 먼저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