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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Oct 27. 2022

현실은 책보다 잔인하다

현실, 이상, 괴리, 신념, 명분, 고려시대, 조선시대, 개국, 멸망

현실은 책보다 잔인하다.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이 지은 『결핍의 힘』26쪽에 나오는 글이다.


어느 사회든 시대를 막론하고 양심의 거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지식인 또는 지성인이다. 지식인하면 다른 이보다 조금 더 배운 사람을 일컫는다. 지성인이라 하면 배운 게 많다는 것에 사리분별이 바르다는 의미가 더해진다. 인류는 지난한 역사를 거쳐오면서 훌륭한 지성인을 많이 배출했다. 특히 사회의 급격한 변화, 과학기술의 발전,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면서 인간의 양심을 바로 세우려고 애쓴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을 지성인이라고 부르는 건 단순히 학력이 높거나 학벌이 좋아서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의 '엘리트'와는 다르다.


지성인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때로 사회의 건전하지 못한 가치관을 꾸짖기도 하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기도 한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중을 일깨우기도 한다. 앞에 나서든 뒤에서 조용하게든 시대정신을 이끄는 역할을 감당한다.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예단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나선다. 하지만 역사는 대중에게뿐만 아니라 지성인에게 똑같이 지엄하다. 이들은 시퍼렇게 날이 선 보도(寶刀)처럼 강할 때도 있지만, 가벼운 입바람에도 꺼지는 촛불처럼 힘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바람대로 지성의 힘이 항상 우세하면 현실이 책보다 잔인하다는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지성인이 괴로워하고 번뇌하는 마음을 한 마디로 보여준다.


대체로 지성인은 정의감에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운다. 때로는 진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거대한 구조악에 가로막혀 좌절감을 맛보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신념과 동떨어진 현실에 좌절하기도 한다. 어느새 현실과 타협하여 주저앉게 된다. 합리주의자로 변장하여 타협하기도 하고, 공리보다는 사익을 쫓는 변절자의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대중이 모이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지성의 총량이 부족하거나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굳건하여 현실이 만만치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약해진 의지는 내면에 모순이 기생하도록 허용한다. 결국 자기 정당화의 길을 선택한다. 사이비 지식인이 되든지, 신념의 반대편에 서든지, 아니면 두문불출 조용히 지내는 삶을 선택한다. 역사의 지성인들이 보여준 모습이다. 

     



식자우환이라는 말이 있다. 쉽게 표현하면 아는 게 병이라는 뜻이다.


■ 식자우환(識字憂患)
    학식이 있는 것이 도리어 근심을 일으키게 된다는 말.


국어사전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예문을 인용한다. 오죽했으면 인생의 철학적인 내용으로 예문을 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세상살이의 이치를 알아 갈수록 앞날이 더욱 걱정되니 이는 식자우환이 아닌가.




옛 역사를 다룬 책을 읽으면 재미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이야기라면 더욱 흥미롭다. 고려말부터 조선의 문예부흥기였던 영·정조왕때까지의 역사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전개된다. 그야말로 어느 민족, 어느 나라의 이야기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다. 1392년에 개국해서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탄할 때까지 치면 518년을 이어온 나라다. 그 기간 나라의 기둥과 들보인 많은 인재가 부침에서 볼 수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지식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식인이 정치를 했다. 정치에서 명분은 중요하다. 그 명분의 중심은 항상 백성, 즉 '국민'이었다.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할 때도 단서는 토지문제였다. 권문세가의 탐욕이 결국 474년이 된 고려를 몰락하게 만들었다. 무신정권 이후로 고려가 망할 때까지 부원세력(附元勢力)과 권문세족이 결국 새 왕조 개창의 명분을 제공했다. 이때 지식인은 신흥사대부로 고려 내 개혁파와 새 왕조를 세우려는 역성혁명파로 나뉜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정몽주와 정도전이다. 백성을 위한 개혁에는 동지 관계였으나, 서로의 국가관은 달랐다. 결국 한 쪽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승자는 유배지에서 맨 밑바닥에 살던 백성들의 '결핍의 힘'을 몸소 체험한 정도전이었다. 둘은 책(경전:經典)을 공부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만들고자 했다. 한쪽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죽임을 당했다. 다른 한쪽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스승을 배반하고 멀쩡한 왕을 끌어내렸다. 승자도 결국은 정치권력을 탐내는 승냥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유달리 조선 역사에는 배운 것 때문에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글로 쓰여 있는 내용을 머리로만 알았지,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방법은 전혀 몰랐던 탓이다. 나쁜 놈들은 항상 앞선다. 나쁜 일을 꾸밀 때은 주도면밀하게 올가미를 만든다. 그런데 이런 건 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당할 수밖에 없다. '책상머리'가 왜 책상머리인지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니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 아는 게 없다.



- 『결핍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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