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여포, 역사, 개, 돼지, 분수를 모르는 사람,
우스개 소리로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최후에 살아남을 생명체는 바퀴벌레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삼국지 초반부에 뜨던 여포는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하기 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여포의 모습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람이 단순하다. 무용이 뛰어나다. 하찮은 소인배다.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을 것 같은 인물들도 결국 죽는다. 의문은 이것이다. 사람은 죽지만 그들의 마음을 지배했던 권력, 돈, 섹스를 향한 탐욕은 DNA처럼 계속 이어진다.
2015년 SBS에서 고려말, 조선초의 역사를 소재로 '육룡이 나르샤'를 방영했다. 드라마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와 다름이 없다. 역사가 재미있는 이유는 인간사가 항상 반복되기 때문이다.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게 내용이지만 작가에 따라 해석을 달리해서 여운이 다르다.
- 길태미 : (저잣거리에 있는 백성들을 향해 외치며) 세상이 생겨난 이래 약자는 언제나 강자에게
짓밟히는 거야. 천 년 전에도, 천 년 후에도 약자는 강자에게 빼앗기는 거라구.
세상에 유일한 진리는,
"강자는 약자를 병탄(倂呑)한다. 강자는 약자를 인탄(躪呑)한다."
이것 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야.
- 이방지 : (검으로 길태미의 목숨을 끊으면서) 강자는 약자를 병탄하지, 이렇게.
· 병탄(倂呑) : 남의 것을 빼앗아 삼키다
· 인탄(躪呑) : 짓밟고 빼앗다
역사는 서사다. 천 년 전이나 5백 년 전이나 지금의 사건은 같지 않다. 각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도 다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 욕망, 탐욕, 정의, 대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어느 시대이든 여포 같은 놈들은 항상 국민을 속이면서 온갖 특권과 기득권을 당연한 것으로 누리면서 살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은 이런 놈들을 처리하지 않고 특권과 기득권을 누리도록 그냥 놔둔 것에서 비롯됐다. 친일파 후예들이 아직도 대를 이어 나라를 좀먹는 걸 보면, 참 후안무치의 절정이다.
여포가 무식하고 우둔하기는 했지만, 한국의 어떤 정치꾼들보다 나은 점은 있다. 대의를 빙자해서 여론을 조작하거나, 남의 약점을 갖고 쥐락피락하지는 않았다. 여포가 아둔함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동정을 받을 만한 점도 없잖아 있기는 하다. 조조는 여포의 재주를 아껴 죽일 생각은 없었다. 여포도 그리될 줄 알고 잡혀서도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일전에 생명을 구해준 유비가 조조에게 여포는 신의가 없는 놈인 사실을 상기시켰다. 조조는 유비의 의견에 따라 여포를 죽였다. 무용에 비해 초라한 죽음을 맞았다.
여포가 동탁을 죽일 때 동탁이 그랬단다. 이런 말을 했는지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다. 소설 삼국지에도 안 나오고, 진수가 기록한 정사 삼국지 위서에도 없는 내용이다. 인터넷 나무위키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 동탁 : 여포야! 어디 있느냐?
- 여포 : 조서를 받들어서 역적을 죽이러 왔다!
- 동탁 : (크게 욕하며) 이런 개자식(用狗)이? 네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조선시대 사람들은 염치없는 걸 가장 부끄럽게 여겼는데, 작금의 정치꾼들은 염치없는 걸 최고의 강점으로 삼으니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다. 여포보다 못한 놈들이 대한제국이 병탄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100년이 넘게 이 땅과 국민을 유린하는 걸 보면 무척 화가 난다.
노암 촘스키가 말했다. 책 제목이다.
"It is the Responsibility of Intellectuals to speak the truth and to expose lies."
"지식인은 거짓을 파헤치고 진실을 말해야 한다."
최소한 진실은 말하지 않더라도 거짓에 편승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자칭 지식인의 수준이 여포보다도 못해 보인다.
역사는 정반합이 아닌 것 같다. 정과 반의 반복이지만, 반이 더 우세한 순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