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삼국연의, 나관중, 모종강, 황석영, 장정일, 고우영
삼국지는 재미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주황색 표지의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에 있는 한 권짜리 책이 삼국지에 대한 첫 기억이다. 종이 딱지 따먹기를 하면서 동그란 딱지에 나오는 그림으로 등장인물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중학생 때 학생용으로 나온 고우영의 5권짜리 만화 삼국지(10권짜리와 그림이 다름)를 보고 또 봤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 삼국지를 읽었다. 이문열의 평역삼국지는 두 번, 황석영의 삼국지는 세 번, 장정일 삼국지는 한 번 읽었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는 읽다가 결이 맞지 않아 그만뒀다. 고우영 만화 삼국지(10권 세트)는 몇 번을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봤다. 중국 드라마를 두 가지 버전으로 봤고, 지금도 종종 돌려본다. 조조, 제갈공명, 사마의를 주제로 다룬 드라마도 거의 다 봤다. MBC와 KBS 라디오에서 방영한 삼국지도 다 들었다.
어떤 마력이 삼국지를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걸까? 삼국지는 나이가 들면서 더 빠져들게 하는 묘미가 있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고 해석이 달라진다. 인생의 경험과 오버래핑이 되는 부분이 늘어나서 그런가 보다. 수많은 군상들의 모습에서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이 보인다.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도 삼국지에 나오는 어떤 인물과 닮아 있는 사실에 놀란다. 승리와 패배는 머리가 좋고 나쁜 데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심성에 있다는 것도 읽을 때마다 새삼스레 알게 된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든 읽지 않은 사람이든 주인공인 유비, 관우, 장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워낙에 회자되는 인물인 데다가 강연이나 강의 등 이야깃거리로 자주 인용되어 그런 것 같다. 세 명이 보여주는 의리와 신의는 사나이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대의를 위해서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모습에 감동한다. 젊은 시절에 접한 유비, 관우, 장비의 모습은 정말 멋졌다. 사나이다웠다. 드라마에서도 항상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상남자로 그렸다. 그게 다였다. 이 세 남자로부터 배울 수 있는 건 이 외에 아무것도 없다. 유감이다.
유비는 왕이 됐다. 관우와 장비는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의 반열에 올랐다. 이전의 사적 관계를 넘어서는 공적 관계로 변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들은 사적 관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성장은 중요하다. 더불어 성숙도 중요하다. 사람이 성장은 하는데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의협을 중시하는 협객으로 살았지만 공적인 관계로 발전했다면,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하고 대의를 중시하고 체계와 규모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세 사람의 불행에서 그치지 않고 결국 망국의 시발이 됐다.
관우는 겸양의 덕을 잃었다. 오만하고 교만했다. 상대방을 어리다고 얕봤다가 죽었다. 그의 지략과 용맹에 비하면 어리석게 종말을 맞이한 거다. 장비는 오호장군이면서 공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신분은 대장군이었으나 정체성은 동네 골목대장 수준이었다. 장군으로서 자질이 부족하여 부하 장수에게 죽임을 당했다. 개죽음을 초래했다. 유비는 왕의 신분을 잊고 사사로운 정 때문에 많은 군사를 죽게 만들고 결국 병에 걸려 죽었다. 어처구니 없는 전쟁을 벌인 대가다. 대의와 명분이 백성과 나라를 위한 지도자의 결정이 아니라 협객 수준의 의분(義憤)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에 의기와 정의감으로 뭉쳤다. 많은 위기를 겪으면서 살아남아 나라를 세울 정도로 강성해졌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했는데 수신을 못해 위나라에 항복하는 단서가 되었다. 허망한 결말이다. 사회 조직이나 국가에도 이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 다만 드러나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삼국지는 읽는 사람마다 해석을 다르게 할 수 있다. 소설인데 이렇게 해석하든 저렇게 풀이하든, 읽는 이가 원하는 대로 느끼면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인구만큼 생각의 경우는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유비, 관우, 장비를 좋아한다. 세상에 사는 동안 이들처럼 의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본받을 만한 인물인 건 틀림없다. 다만 마지막에 지위와 책임에 걸맞은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게 흠이라면 흠이다.
공자가 일일삼성(一日三省)을 일갈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나이가 들어서도, 지위가 바뀌었어도 이 말을 실천했다면, 삼국시대의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한국 근·현대사에도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하면 통탄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