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태종, 이방원, 조선왕조 5백 년, 붕망
KBS 대하드라마 22화 주제는 '붕망'이다.
드라마 작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역사 해석이 이전의 것들과는 다르다. 상상력도 풍부하고 통찰력도 깊어 보인다. 그동안 모르고 있던 이성계의 약점을 드러내고, 무능해 보였던 정종 임금에게 군왕의 모습을 되돌려주었다. 수수께끼 같았던 이방원의 심리 상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사건을 해석했다.
이방원의 이미지를 철인(鐵人)과 냉혈한으로만 인식했으나, 이번에는 군왕이자 한 인간의 모습이 잘 보인다. 특히 무고한 피해자로만 보였던 처가 민제(閔霽) 가문의 야망을 잘 드러냈다. 단지 원경왕후와 처남들의 권력욕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문의 남녀를 불문하고 불나방처럼 자제력을 잃은 인간의 욕망을 잘 묘사했다.
드라마 속의 대사와 키워드는 현실과 시의적절하게 맞물려서 시사하는 바도 있고 흥미로울 뿐이다.
붕망(朋亡), 인정을 끊다
사사로운 인간관계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 같은 서민(庶民), 옛말로 백성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덕목은 아니다. 벼슬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신분상의 특권을 누리는 것도 아니니 그 누구도 내게 붕망을 요구할 수는 없다. 내가 먼저 나서서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공인(公人)이라면 다르다. 요즘 말로는 공정(公正)쯤 되겠다.
드라마에서 포청천 뒤에는 명경고현(明鏡高懸)을 쓴 편액을 비춰준다. 밝은 거울이 높이 걸려 있다는 의미다. 시비를 분명하게 따져서 판결을 공정하게 하는 관리의 모습을 제시한다. 옛사람들이 중시했던 덕목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 국민을 개, 돼지로 생각하면서, 그것을 여과 없이 표방해도 아무 이론이 없는 시대다. 사람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에 마음이 더 쓰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절도는 사라졌다. 소유의 크기에 따라 가치를 매기는 천박한 사회로 변질된 지 오래다. 망조(亡兆)가 들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는데 말이다.
명경고현(明鏡高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