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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Jun 10. 2022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2)

유튜브, 문해력, 다중문해력, 리터러시, 독서, 책일기, 독해력, 인문학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6/10일 (금) 40~57쪽


“문자 텍스트 중심의 단일 문해력에서는 이해와 의미 파악이 중요했다면, 지금과 같은 멀티리터러시 상황에서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동이 발동되고 있는가를 알고 공명하는 게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41쪽)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핵심이 ‘의미’가 아니라 감정의 ‘강도’인 것이죠(사이토 다마키, 2005). 86세대 같은 근대주의자들에게는 될 수 있으면 자제해야 하는 것이 청소년 관계의 토대가 된 거예요. 말이 아니라 글에서도요.”(44쪽)


“사전적인 의미의 문해력이 아무리 떨어진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 사이에서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것입니다.” (49쪽)


“학교는 늘 기호학적이고 추상적인 것을 다루는 역량을 가르치고 그것만 측정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기호학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을 삶의 맥락 속에서 위치시키는 힘은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오자와 마키코, 2012)” (49~50쪽)



“내가 이 텍스트를 대할 때와 저 사람이 텍스트를 대할 때는 굉장히 다른 지식과 태도를 갖고 읽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내 방식대로 읽어내지 않으면 리터러시가 떨어진다고 비난하는 것, 이게 위험하죠.” (51쪽)



“소통이 많아지고 반대할 일이 잦아드는 상황에서 제대로 반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거기서 저열한 반대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 ‘욕하기(name-calling)’예요. 논지와 전혀 관계없이 상대방에게 욕설을 퍼붓는 건데,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 등을 비하하는 멸칭으로 쓰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52쪽)



문해와 비문해를 이분법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철저히 비과학적입니다. 문해력이 좋다, 떨어진다로 생각하기보다는 문해력에 스펙트럼이 있고 종류도 굉장히 다양하다고 보는 게 적절하죠. 누구도 모든 맥락에서 통하는 완벽한 문해력을 갖고 있진 못하거든요.“ (56쪽) 




□ 오늘의 단상


문해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타인의 문해력을 존중하려면, 톨레랑스가 먼저다.

상대방을 공존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나와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게 문해력의 출발점이다.


획일화한 교육 시스템과 욕망 위주로 촘촘히 짜인 시대정신.

차분한 심성을 지향하기보다는 화를 품고 사는 현대인이라 생각하는 여유가 부족한 걸까?


자수성가하고 남들이 보기에 성공했다고 평가를 받으면 우쭐해지는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이해하기보다는 가르치려 하고, 공감하기보다는 내 방식을 강요하고, 듣기보다는 말만 하려 하고... 


그렇지 않아도 지구 상에는 엄청난 전자기파가 넘쳐나고 있는데, 80억 인구의 감정 소비 전파까지 더해 더 어지러워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문해력은 지식의 넓이에 있는 게 아닌 듯하다.

문해력은 내 지식과 경험의 일반화로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이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인정하는 깊은 마음이다.


문해력은 능력(competence)의 영역이 아니다. 

이해에 기초를 둔 공감(sympath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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