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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Jun 13. 2022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3)

유튜브, 문해력, 다중문해력, 리터러시, 독서, 책일기, 독해력, 인문학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6/13일 (월) 57~73쪽     


“리터러시 행위를 정해진 의미의 전달로 보는 반대편에 수용자를 중심에 놓는 관점이 있는데, 흔한 오해는 수용자, 즉 독자가 천 명이 있으면 똑같은 텍스트의 의미도 천 개라고 보는 거죠. 이건 극단적인 포스트모던적 읽기관(-觀)이거든요.” (59쪽)     


“리터러시란 무언가를 이해하고, 이해한 걸 바탕으로 어떤 행위, 즉 판단을 하거나 결정을 하거나 합의를 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삶을 영위하고 관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역량인 거죠. 그런데 그걸 일종의 무기로 쓰려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와 그들, 더 심하게 말하면 나 빼고 다른 사람을 갈라버리죠. 그리고 그 선 밖에 있는 사람들을 근대적 의미로 인간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밀어내버리는 무기로 사용하는 거죠. 리터러시가 이해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배척하고 배제하는 장벽이 되어버린 거예요.” (62쪽)     


“우리 사회는 리터러시가 어떤 윤리적인 책무, 소명, 의무를 불러일으키는가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리터러시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어떤 윤리적 책무를 가져야 하는가에는 관심이 없고, 이게 얼마나 권력적인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리터러시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사회를 서열화하고 지배와 피지배자를 정당화하는 도구, 또는 누군가를 비인간화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거죠.” (66~67쪽)     


“뭔가 확실하게 가르치는 것 같지만, 사실 강도만 세질 뿐 도약은 일어나지 않는 거죠. 저는 도약이 일어나지 않는 것 자체를 비문해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리터러시를 상태가 아니라 운동이라고 정의한다면, 한 상태에서 계속 강화만 되는 것은 비문해죠.” (73쪽)

         



□ 오늘의 단상     


사람의 생각은 상대적이다. 

세상에 죽음 이외에 확실한 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성(知性), 감정(感情), 의지(意志)의 지·정·의를 기반으로 생각하며 판단한다.

문해력도 결국 이 세 가지의 영향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인지상정이다.     


문해력을 권력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고, 스스로 빈약한(?) 문해력에 자신보다 조건이 나아 보이는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굴복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해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기 주도적 사고 체계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양날의 칼이다.     


누릴 권리만 생각하면서 사회적으로 동의한 의무는 망각한다.

보이는 곳에서는 바른 듯 언행을 하지만, 뒤에서는 정반대로 살아간다.

도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노력이 없으니 변화의 물결을 감지하지 못한다.

한쪽 날만 쓰면 결국 무디어질 뿐이다. 다른 쪽은 자연스레 녹이 쓰기 마련이다.     


자신에게 비판적으로 물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틀린 것인가, 다른 것인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이 진지하게 자신을 들여다봐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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