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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인튜너 Dec 31. 2022

인류는 무엇을 깨달았나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레마르크, 서부전선, 1차세계대전, 연합국, 추축국, 파울 보이머

서부 전선, 진짜로 이상이 없나?




한 인간의 죽음을 감정의 개입이 없이 이렇게 무덤덤하게 묘사하다니, 슬프다. 전쟁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극단과 극한의 환경을 초래한다. 그 상황에서도 존엄한 인간으로서 휴머니즘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파울 보이머는, 결국 덧없이 전사했다. 어떻게 죽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가족과 학교와 일터를 떠나 전장으로 내몰렸다. 지도자들의 무지와 탐욕으로 죽음의 현장으로 떠밀려간 가련한 인생들.... 이기든 지든 일상으로 돌아갈 소망으로 끈질기게 버텼지만 결국 헛된 죽음을 맞았다.


가슴이 아린다. 한 달만 더 버텼으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러나 생존했다 한들 20여 년 후에 다시 전쟁터로 변할 그 땅에서 무슨 희망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레마르크는 살아남았다. 비인간적인 전쟁을 고발하기 위해, 죽음의 공포와 절망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보고 느끼고 몸소 겪은 일을 담백하게 과장 없이 그려냈다. 소설의 주인공인 파울 보이머를 살리지 않고 죽게 했다. 주인공의 생존보다는 전장의 참상이 핵심 메시지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1차세계대전은 대량 학살을 저지른 인간성의 상실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인간의 광기를 제어하는 힘은 이성과 보편적인 인류애와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레마르크의 외침을 외면한 인류는 10년 만에 1차세계대전보다 더 끔찍한 2차세계대전으로 내몰렸다. 앞으로 3차세계대전이 없기를 바라지만, 글쎄다, 현대인류는 20세기에 살았던 인간보다 더 무지한 것 같다.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엎드린 채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을 뒤집어 보니 그가 죽어 가면서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된 것을 마치 흡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302쪽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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